9/2(연중 제 22주간 목요일 ) 성 김대건 신학생의 여섯 번째 편지-4
2주간 - 같은 그리움을 지닌 이들의 도움 : 진흙 길에서 만난 손길
<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 : "온갖 위험과 추위를 감수하는 용감함입니다." >
성문에는 군인이 지키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통행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마침
변문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는 사람들 틈에 끼여 지나갔습니다. 그곳에 있던 군인이 저에게 통행증을 요구할
차례가 되었을 때 세관원들 한테로 갔습니다. 저는 요행히 몸집이 큰 소의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관에서 여행자들에게 한 명씩 세관장 앞으로 나와 성명을 대라고 하였습니다.
날이 어두웠으므로 불을 켜놓고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세관장 외에도 다른 세관원 한 사람이 높은 곳에 서서
아무도 달아나지 못하도록 두루 살피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지 몰랐습니다.......등 뒤에서 세관원이
저를 부르며 통행증도 내지 않고 가느냐고 호령하였습니다. 그가 연거푸 저를 부르기에 통행증을 벌써 내주었다고
해답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뒤쫓아 오는 줄로 믿고 달아나 성 밖 변두리로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저를 맞아줄 곳이
한 집도 없었으므로 밤새도록 대략 백리를 걸었습니다. 동이 틀 무렵 너무나 추워서 몸을 녹이려고 조그마한 주막에 들어갔더니
여러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얼굴과 옷을 살펴보고 또 말소리를 들어보고는....저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제 머리를
살펴보고 제가 신은 중국 버선을 검사하였습니다......저는 정탐꾼이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서....그 작은 주막을 멀리 피하면서
우회하여 다시 중국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가 뜬 다음에는 감히 길을 나서지를 못하고 수목이 울창한 산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져 어둠이 땅을 내리덮었을 때 걸음을 재촉하여.....계속 길을 걸어 저녁때가 지나 변문에 도착했고
거기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물건을 마련하고 5일 만에 백가점에 도착하여 공경하올 메스트르 신부님에게로
되돌아 왔습니다......기도 중에,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전에 정성껏 저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공경하올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공경하올 스승님께, 순명하는 아들 김해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 요동(백가점)에서, 1843년 1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