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연중 제 22주일 ) 성 김대건 신학생의 다섯 번째 편지
2주간 - 같은 그리움을 지닌 이들의 도움 : 진흙 길에서 만난 손길
<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 : "순조로운 항해에 대한 감사 미사 봉헌" >
이 항해는 순조로워 아무런 역경도 당하지 않았고 다만 북풍이 우리의 항진을 더디게 하였을 뿐입니다.
배 안에서는 네 사람 외에는 모두 신자들이어서 이들은 우리를 잘 대우해 주었고 신부님들께서는
매일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범 요한은 일을 주선하도록 요동 교우촌에 파견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머물고 그 대신에 두 요셉이라고 하는
교우촌 회장을 보내왔습니다. 공경하올 신부님들과 우리가 계획한 대로 신부님들을 밤중에 인도하려고 하였으나
그때의 주변상황이 이를 허용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이 환히 밝은 후에야 외교인들의 작은 배로 짐을 보내고 우리는 두 요셉의 안내로 배에서 내렸습니다.
짐을 운반하기 위하여 두 명의 선원이 우리 배에 올라탔는데, 그들이 미소를 짓고 계시는 신부님들을 보고
서양 사람인 줄 알아차렸습니다.
우리가 세관에 접근하였을 때 두 요셉은 저에게 방금 물이 빠져서 대단히 질퍽거리는 강변에 신부님과 함께 내리도록
귓속말을 하였습니다. 그곳은 세관에서 마주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신부님들이 세관에서 봉변을 당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토마스(최양업)와 함께 세관으로 직행하였습니다.
우리는 메스트르 신부님과 브뤼니에르 신부님, 두 명의 선원 그리고 저까지 다섯 명이었는데, 모두 진흙에 발이
빠졌고 길도 아닌 곳을 허둥대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외교인들은 신부님들을 보고 영국인이라고 떠들었습니다.
잠시 길을 걷고 있을 때 세관 쪽에서 30명 가량의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면서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경찰관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경찰관도 있고 손님의 안내자도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걸어가시고 그들은 오랫동안 힐문하여 우리를 괴롭힌 후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우리는 백가점이라 불리는 교우촌으로 길을 재촉하였고 두 요셉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 다섯 번째 편지 요동(백가점)에서, 1842년 12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