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러분의 사랑을 숨겨둘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성소에 맞갖게 표현하고 전파하십시오.
(복자 G.알베리오네)
(복자 G.알베리오네)
성바오로수도회 마리오 수사
2007.02.04 발행 [907호]
"추워요. 제발 불 좀 때고 살아요." "실내등 좀 밝은 걸로 교체하면 안 될까요?"
성바오로수도회(서울 강북구 미아동) 수사들은 이따금 춥고 어두운 수도원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에는 이런 '기초생계형' 민원이 더 심하다. 그러나 시설관리 책임자 마리오(Mario Mecenero, 75) 수사 대답은 녹음기를 되돌리는 것마냥 40년째 똑같다.
"하나도 안 추운데. 이 정도면 충분해."
불평을 한다해도 보일러 온도 눈금이 올라가리라고 기대하는 수사는 없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수사 서너명은 아예 오리털 침낭을 구해다 민생고를 해결한다.
▶ 43년째 수도원 허드렛일 전담
마리오 수사가 '짠돌이' 정신으로 일관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절약하면 외국에 유학 중인 수사 형제들에게 학비를 한푼이라도 더 보내줄 수 있고, 더 좋은 책을 만들어 복음사업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책ㆍ음반ㆍ영상물 등 홍보수단을 이용해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다.
이탈리아 출신 마리오 수사는 12살부터 수도원 밥을 먹었다. 1964년 한국에 도착해 43년째 미아동 수도원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책상에 앉아 책을 만들어 본 적은 없다. 시설관리, 그러니까 형제들이 좋은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데 필요한 시설을 마련해 관리하는 게 고유 업무다.
그런데 말이 시설관리이지 실상 하는 일은 온갖 허드렛일이다. 숙소 보일러가 고장나면 연장을 챙겨 달려간다. 또 서원(書院)을 개원하면 며칠씩 매장에 가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 전국에 산재한 성바오로서원 중에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하다못해 수도원 복도 전등 교체까지 그의 몫이다.
그는 75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장하고 다부지다. 손은 자동차 정비공마냥 기름때에 절어 있다. 얼굴은 이탈리아 백발 신사인데 두 손은 영락없는 막노동꾼의 그것이다.
"옛날에 인쇄기 고치러 많이 다녔어요. 난 눈썰미가 있어서 만들고 고치는 일이 좋아. 요즘도 이런저런 일을 하다 밤 9시나 돼야 숙소에 가요. 그런데 수도자는 일만 하면 안돼.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건 '노가다'밖에 안돼. 기도하지 않으면 힘 없어."
한국에서 43년을 산 외국인치고는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다. 공사판에서 말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란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수도원 신축공사에 매달렸다. 한국인 인부들 속에서 '데모도(허드렛꾼)' '시아게(마무리)' '단도리(일을 하는 절차)' '덴죠오(천장)' '도끼다시(갈아내기)' 같은 말을 열심히 익혔는데 그게 전부 일본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허탈했다고 한다. 서양 선교사가 한국어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공사판에서 일본어부터 배웠으니….
한국 수도회들이 다 그렇듯, 성바오로수도회도 초기에 무척 궁핍했다. 그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먼저 와있던 이탈리아 수사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밥과 김치가 입에 맞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우유와 고기를 사다 먹을 형편도 안됐다.
막내인 마리오 수사가 묘수를 찾아냈다. 수도원 뒷산에서 염소를 치는 허름한 집을 눈여겨 봐뒀다가 올라가서 단독협상(?) 을 했다.
"너네 집 너무 늙어서(낡아서) 무너진다. 내가 고쳐주겠다. 너 돈 없지? 염소 한마리 주면 고쳐줄게."
수사들은 그가 끌고 내려온 염소에서 하루 2ℓ씩 우유를 짜서 마시고 기운을 차렸다.
▶ 마음 둔 곳이 내 고향
1961년 수도원 설립 이후 한국을 거쳐간 이탈리아 수사는 8명. 이 가운데 5명이 벌써 하늘나라에 갔다. 그는 한국 성바오로수도회의 산증인이자 유일한 외국인이다. 그는 "마음을 둔 곳이 고향"이라고 말한다.
"수도자는 무슨 일이건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오로지 하느님 영광을 위해서 장상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나이가 훨씬 아래인 장상에게도 '예'하고 순명할 수 있는 거라고. 요즘은 형제들 숙소 수리하느라 정신 없어."
그는 한국 사람들보다 "빨리 빨리"를 더 입에 달고 산다. 우두커니 앉아서 쉬는 체질이 아니다. 주일에도 수도원 텃밭에 가서 포도나무 200주를 가꾼다. 가을이면 수확한 포도로 미사용 포도주를 직접 담근다. 덕분에 수도회는 미사주를 밖에서 사다 쓴 적이 한번도 없다. 수도원 식당에서 나오는 야채 부스러기로 토끼도 20여마리 기른다. 형제 수사들은 그 덕에 가끔 토끼고기 맛을 본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성바오로수도회의 가족 수도회인 성바오로딸수도회, 착한목자수녀회,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도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집을 수리하건 기계를 고치건 공구 몇개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성바오로 가족수도회의 '맥가이버'다.
"부르는 곳에 달려가서 도와주면 기분이 좋아. 누가 날 도와주는 건 별로 안 좋아해. 남을 도울 때가 더 좋아. 그런데 이제 할아버지가 돼서 걱정이야."
그는 젊었을 때 영화배우 뺨치는 미남이라 인기가 많았다. 한때 이 콧날 오똑한 귀공자형 수사가 양말을 손수 꿰매 신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요즘 시장에 500원짜리 양말 많아서 꿰매 신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뜨거운 인기는 젊었을 때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라며 장난기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난 이미 7살 때 아녜스라는 약혼녀가 있었어. 마을에서 성당까지 걸어다니는 동안 사랑이 싹터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아녜스가 먼저 12살 되던 해에 수녀원에 갔어. 얼마 뒤에 산에서 양치고 있는데 성바오로수도회 신부님이 오셨다고 어머니가 불렀어. 그래서 그분 따라 수도원에 들어왔지."
순박한 산골 소년의 밤색 머리는 어느새 은회색으로 변했다. 43년을 이 땅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스파게티와 빵을 곁들여야 소화가 잘 되는 외국인이다. 낯선 땅에서 보낸 봉헌생활 43년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낯설다고? 내 마음의 100%가 여기에 있어. 그러니까 여기가 고향이지. 그리고 여태껏 기쁘게 살았고, 또 기쁘게 살고 있어. 기쁘지 않았으면 벌써 수도원을 뛰쳐나갔지. 수도자는 하느님한테 다 맡기고 사는 사람이야. 다 맡겨 봐. 그럼 기쁘고 행복해. 그건 하느님이 채워주시는 거야."
그는 "수도자는 기도에서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며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라도 묵주기도만큼은 다 바치고 잔다"고 말한다.
김원철 기자wckim@pbc.co.kr
▨ 성바오로수도회
이탈리아의 야고보 알베리오네(1884~1971) 신부가 인쇄매체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1914년 창설한 수도회. 알베리오네는 인쇄기술이 한창 발전하자 "인간과 세상을 병들게 하는 비윤리적 출판에는 윤리(그리스도교 사상)로 무장한 출판으로 맞서야 한다"며 작은노동자 인쇄학교를 열어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다.
수도회는 성바오로딸수도회와 함께 출판물은 물론 영화 ㆍ 라디오 ㆍ 텔레비전 ㆍ CD ㆍ DVD ㆍ 인터넷 등 각종 홍보수단을 이용해 세계 27개국에서 복음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회원들은 오늘날 성바오로가 살아 계셨더라면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셨을까 성찰하면서 사도직을 수행한다.
한국에는 1961년 진출했다. 한국 성바오로수도회(준관구장 심재영 수사) 전화: 02-989-4954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