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목) 성 김대건 신학생의 네 번째 편지-3
<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 : "유숙할 곳 없는 가련한 처지에 놓인 선교사의 모습" >
신부님들은 밤에 군함에서 내려 상륙하기로 작정하셨으나 주위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낮에 교우촌 회장을 따라 상륙하였고, 짐 보따리는 다른 배모 보냈습니다.....우리가 세관에 가까이 갔을 때 안내자는
여러 가지 귀찮은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 우리에게 강변에 내려 검문 장소를 슬그머니 지나가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곳은 물이 빠진 지 얼마 안되어 대단히 질퍽거렸는데 세관에서 빤히 보였습니다.......외교인들은 우리가 질퍽하고 길도 없는 강변
에서 허둥거리는 것을 보고 한편에서는 신부님들을 영국인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정 스무 명가량이 고함을 치며
우리한테로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손님 안내자였는데 우리는 그들을 경찰관인 줄로 여겨 겁이 났습니다.......그 사람들이 와서 우리
를 붙잡으며 여러 가지로 힐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아무 대꾸도 없이 곧장 걸어갔습니다. 저는 우리가 소매 속에 감추
고 있던 책 때문에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여전히 붙잡고 힐문하였으므로 제가 화난 목소리로 '당신네는 안녕질서
를 위하여 정부에서 임명된 경찰관이면서 무고한 인민을 모욕적으로 대하느냐'고 꾸짖었더니 그들은 우리를 내버려 두고 떠나갔습니다.
우리는 수레를 타고 요셉의 집에 다다랐으나 두씨 가족 외에 다른 신자들은 모두 신부님들을 맞이하기를 꺼려했습니다.
베롤 주교님이 그들 집에 유숙하는 것도 그들은 원하지 않았으니만큼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 네 번째 편지 요동(백가점)에서, 1842년 12월 9일 -
성 김대건 신부님의 용덕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처지를 바라보며, 지금 안주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게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