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화) 성 김대건 신학생의 네 번째 편지
<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 : "하느님의 자비하신 안배" >
-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보낸 서한 -
우리는 출발할 날을 고대하며 오송구에서 퍽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실 함장이 남경 시내를 구경하고자 해서 중국 배 한 척을 임대하였는데, 에리곤호는 강을 거슬러 오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서 세 명의 장교와 선원들을 데리고 출발했는데 저는 통역관으로 따라갔으며 메스트르 신부님은 에리곤 호에 그대로 머물러 계셨습니다.
출발한 지 약 6일 만에 진강부에 도착하여 하루 동안 시가지를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였는데, 전쟁으로 파괴되고 강도들의 약탈로 폐허가 된 시가지는 사방에서 악취가 났습니다.....
관광을 마치고 오송구로 돌아오는 도중에 우리가 고대하던 파보리트호(프랑스군함)를 만났습니다. 그 배에서 브뤼니에르 신부님과 그의 두 동행인 최양업 토마스와 범 요한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괴움을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우리가 모두 모였으니 즐겁기는 하나 사정이 더욱 곤란한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또한 서글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가 에리곤호에 도착해 보니 신부님들이 범 요한으로 하여금 브뤼니에르 신부님을 안내도 하고, 베롤 주교님에게 보내는 짐을 처리하도록 상해의 신자들한테 심부름을 보냈는데 그가 돌아 오지 않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세실 함장이 조금 뒤 출범하겠다고 똑똑히 말하였지만 온종일 범 요한을 기다렸지만 허사였고 속히 돌아올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을은 부득이 브뤼니에르 신부님과 토마스가 여행 보따리를 맡아가지고 육지에 내려서 범 요한을 기다리게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비하신 안배로 다행히 오래전부터 우리와 친밀히 교제하였던 황세흥이라는 해변에 거주하는 외교인이 에리곤호 출항 전날 저녁에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리하여 브뤼니에르 신부님과 토마스는 그의 동의를 얻어 여행 보따리를 가지고 그의 집에 가 있기로 하였습니다.
(요동(백가점)에서, 1842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