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갈릴래아
갈릴래아는 북 팔레스티나 북부 헤르몬산 기슭에서 남쪽의 에스드렐론 평원에 이르는 지방입니다. 마태오는 예수님 사명수행 첫 소임지를 이곳 ‘갈릴래아’라고 말합니다. 이는 북부 지파들이 아시리아인들에게 약탈당하고 난 후 이 지파들에 관해 이사야가 한 예언 때문이기도 합니다(60,21). 시간이 흐르면서 팔레스티나의 북부 지역에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살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오가 이 지역을 일컬어 “이방인의 갈릴래아”라고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 사는 이들, 즉 이방인들 위에 떠오른 큰 빛이신 것입니다. 유다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갈릴래아 지역은 바다같이 넓은 호수를 품고 있습니다. 물이 주는 장점을 통해 생필품이 활발하게 생산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산 활동의 결과인 ‘부(富)’는 이들 것이 아닌, ‘예루살렘’ 기득권자들의 소유로 갈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노동의 댓가 란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지역의 백성들을 바라다보시면서 어떻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지를 잘 아십니다. 허약하고 병들고 희망이 없는 이들에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치유입니다. 치유방법도 특별한 마술적인 능력을 이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15,29-31). 이어오병(二漁五餠)의 기적도 이방인의 땅, 갈릴래아에서 였습니다(15,32-39). 왜 그러셨을까요? 국가, 민족,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당신 자녀가 자유와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는 실제 행동으로 자신을 개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실현됩니다.
예수님 수난 두 번째 예고도 ‘갈릴래아’에서였습니다(17,24-27). 수난예고 대상은 변화를 열망하면서도 인생목표와 생활 태도는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서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픔에 잠깁니다. 노고, 희생이 없는 성공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야하는 것이 숙명입니다. 제자들은 이 점을 상기해야합니다. 갈릴래아는 어떠한 장소인가요? 구약의 구원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 메시아가 첫 복음을 선포하던 곳, 제자들이 스승을 만난 곳, 영과 육의 치유를 베푸신 곳, 복음을 선포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이 있는 곳. 이들을 하느님께로 데려오기 위해 헌신과 노고와 희생은 필수임을… 누가 노고와 고통이 없는 행복만을 말한다면 전부 가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앞날이 암울할 때, 되는 일이 없이 뒤엉킬 때,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만나자던 곳, 부활하신 예수님,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성공의 비결을 일러주시던 곳… 출발점은 늘 언제나 ‘갈릴래아’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누비던 삶의 현장, 예수님의 사랑이 스며있어 배어나오는 삶의 현장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성찬을.(디모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