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5일(일) 연중 제23주일 - 4주간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빌며 :
박해 속에서도 자라난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
"우리는 인간의 구원을 바랄 수 없어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만 믿고 있었습니다"
(열여섯 번째 편지)
1845년 3월 27일 서울에서 리브아 신부님께 보낸
김대건 신부의 열 번째 편지입니다.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은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찾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공경하올 리브아 신부님께
저는 페레올 주교님의 강복을 받고 한밤중에 신자들을 따라나서서 해 질 무렵 의주 읍내가 바라보이는 곳
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의쥐에서 이십 리가량 떨어진 산골짜기를 찾아들어 울창한 숲속 어둠침침
한 나뭇가지 밑에 몸을 숨겼습니다. 사방에 눈이 쌓여 산촌이 모두 하얗고 싸늘한데 밤이 되기를 기다리자
니 어찌나 지루한지 묵주기도를 수없이 거듭하였습니다. 해가 지고 천지가 어둠에 잠겼을 때 하느님의 도
우심을 구하면서 그것을 떠나 읍내를 향해 가는데 발소리마저 내지 않으려고 신발도 벗고 걸었습니다. 제
가 약속했던 곳에 겨우 이르러 보니 신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되고 근심이 되어 두번
이나 읍내에 들어가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헛일이었습니다...... 저는 추위와 굶주림, 피로와 근심에 짓눌
려 기진맥진한 채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거름더미 옆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젼혀 기대할
수 없고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고대하면서 먼동이 틀 때까지 녹초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를 찾아다니던 신자들이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저보다 먼저 왔는데 저를 만나지 못하
자 되돌아갔다가 두 번째 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얼마 동안 기다렸는데 제가 오지 않으니까 모두 걱정
을 하면서 오 리나 나가서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근심으로 밤을 지새운 뒤 절망하고 낙
심천만하여 돌아갈까 하던 참에 저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에 넘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열 번째 편지 서울에서, 1845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