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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파스카 성삼일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원칙과 지침 140항-146항
파스카 성삼일
140. 해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다시 살아나신 지극히 거룩한 성삼일에”143)이루신 인류 구원의 가장 위대한 신비들을 거행한다. 성삼일은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저녁기도까지이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하여”144) 거행된다.
성목요일
수남 감실 조배
141. 대중 신심은 주님 만찬 저녁 미사에 이어서 하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 조배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145) 그 유래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오랜 역사적 과정 때문에, 성체를 모셔 두는 장소는 전통적으로 ‘거룩한 무덤’으로 일컬어져 왔다. 신자들은 수난 감실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으며 그곳에서 약 40시간을 머물러 계셨던 예수님께 경배드린다.
신자들에게 성체 안치의 의미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성체를 옮겨 모심은 성금요일의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위해서나 병자들의 노자성체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엄숙하고 장엄하게 보존하는 것이다.146) 또한 예수님께서 이날 세우신 놀라운 성사를 침묵 중에 장시간 흠숭하도록 초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수난 감실에 대하여 ‘무덤’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무덤을 연상하게 하는 어떤 장식을 해서도 안 된다. 수난 감실을 무덤이나 묘비의 형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성체는 성합에 보존하여야 하며 성광에 현시해서는 안 된다.147)
성목요일의 자정이 지나면 외적인 장엄함 없이 성체 조배를 한다. 주님 수난의 날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148)
성금요일
성금요일 행렬
142. 교회는 성금요일에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한다. 교회는 오후의 전례 행위를 통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십자가를 경배하며 그리스도의 옆구리의 거룩한 상처에서 시작된 교회의 탄생을 기념한다(요한 19,34 참조).149)
십자가의 길과 같은 성금요일의 다양한 대중 신심 형태와 더불어서, 이 수난 행렬은 물론 가장 중요하다. 수난 행렬은, 대중 신심의 형태에 따라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다가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루가 23,53)에 모셨던 친구들과 제자들의 소규모 행렬을 나타낸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행렬은 보통 엄숙한 침묵과 기도, 주님을 장사지내는 의미를 깊이 통찰하고 있는 많은 신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143. 그러나 이러한 대중 신심의 표현들이 시간적으로나 신자들을 소집하는 방법 면에서 성금요일의 전례 거행을 대신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성금요일의 사목 계획에서는 장엄 전례 행위에 일차적인 관심과 중요성을 두어야 하며, 신자들은 다른 어떤 신심 실천도 이러한 전례 거행을 객관적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끝으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행렬과 성금요일의 장엄 전례 행위를 통합해서는 안 된다. 예식이 왜곡되게 뒤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난 연극
144. 여러 나라에서 성주간 동안에 특히 성금요일에 수난 연극을 한다. 이것은 흔히 신심 행위로 여겨질 만한 ‘성극’이다. 실제로 이러한 성극은 거룩한 전례에 그 기원을 둔다. 수도승들의 성가대에서 시작된 이러한 성극 가운데 일부는 말하자면 더욱더 극화되어 교회 밖에서도 상연되어 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심회에서 주님 수난 공연의 책임을 맡아서, 그 구성원들이 그리스도교 생활을 재현하는 특별한 책임을 맡아 왔다. 그러한 공연에서 배우와 관객은 신앙과 참된 신심의 분위기에 몰입한다. 주님의 수난 연극이 진실하고 대가 없는 신심의 이러한 순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신심 표현이기보다는 관광객들의 구미에 맞춘 통속적인 작품의 특징을 띠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극’과 관련하여, 신자들에게 기념 ‘공연’과 회상이나 수난의 구속 사건의 신비로운 현존인 ‘전례 행위’의 차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참회 행위는 권장되지 않는다.
고통의 성모님
14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고통 기념"150)은 교리적으로나 사목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소홀히 하지 않도록 권고하여야 한다. 대중 신심은 복음서 이야기를 따라 성모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구원의 수난에 동참하셨음을 강조하며(요한 19,25-27; 루가 2,34 이하 참조),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신심 행위들을 탄생시켰다.
- 성모님의 탄식(Planctus Mariae). 성모님의 깊은 슬픔을 표현한다. 이러한 슬픔은 흔히 성모님께서 죄 없으시고 거룩하시며 선하신 당신 아드님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잘못과 인류의 죄 때문에 탄식하신다는 내용의 수준 높은 글이나 음악 작품으로 표현된다.
- 비탄의 시간(Ora della Desolata). 신자들은 당신 외아드님의 죽음에 낙담하시고 몹시 슬퍼하시는 주님의 어머니와 함께 경건하게 밤을 지샌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계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죽음에 대한 세상의 슬픔이 성모님을 통해 표현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자들은 성모님을 통하여 수세기에 걸쳐 자식을 잃는 슬픔을 맛보았던 모든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이러한 신심 행위는, 라틴 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El Pesame라고 불리는데, 슬퍼하는 어머니 앞에서 감정을 표시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과 거기에 동참하신 성모님의 위대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토요일
146. "성토요일에 교회는 주님의 무덤에 머물면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저승에 가심을 묵상하고, 기도와 단식 중에 그분의 부활을 기다린다."151)
대중 신심은 성토요일의 고유한 특성에 둔감해서는 안 된다. 이날에 주님의 부활을 앞당겨 경축하였던 이전의 축제 관습이나 관행들은 부활 성야와 예수 부활 대축일에 유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