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회 등 9개 수도회 창설자 알베리오네 신부
홍보 수단 통한 복음 선포 선구자
내년으로 탄생 백주맞아…현재 시성 조사 추진 중
1914년「인쇄 기술학교」로 시작
말보다 행동 앞선 탁월한 활동가
발행일1983-05-22 [제1356호, 8면]
70여 년 전 현대사회의 여러 계층에 복음을 침투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계속되는 연구와 가능성에 대한 영감으로 성 바오로 수도회를 창설한 알베리오네 신부. 대중 속에 하느님의 말씀-성서를 침투시켜야 한다는 교황 레오 13세의 호소에 힘입어 부도덕하고 무신론적인 방송이나 출판에는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방송과 출판으로 맞서고 사회를 타락케 하는 비도덕적인 조직 역시 신앙과 도덕으로 무장한 강력한 조직으로 맞서야 함을 주창한 알베리오네 신부가 내년으로 탄생 1백주년을 맞는다.
현재 시성을 위한 조사가 추진되고 있는 알베리오네 신부는『성덕이란 어떤 지점에 안주 하여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투쟁일 뿐이다』라는 신념으로 활동을 한 놀라운 활동가였으며 남보다 몇 배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과묵하면서도 저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용기 있는 사람,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한 사람 등으로 불리웠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인내롭게 기다리며 반항을 하지 않는 신앙의 사람인 알베리오네 신부는 그처럼 활동가였으면서도 또한 거절도 할 줄 아는 분별력있는 사람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3월 21일 알베리오네 신부의 탄생 1백주년이 시작되는 해를 맞이하여 성 바오로 수도회 남녀 수도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출판을 비롯, 홍보 수단을 통한 현 교회의 복음적 사명을 깊이 인식해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이에 발맞춰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감에 의해, 그리스도적인 목적과 교육적이며 양성의 목적으로 이와 같은 일을 해오고 있는 성 바오로 수도회의 활동을 찬양했으며, 알베리오네 신부의 선구자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겸손하고 과묵하고 피곤을 모르고 언제나 주의 깊고 침착하고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는 사람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현재「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성 바오로 수도회를 비롯, 성 바오로 여자 수도회ㆍ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ㆍ착한 목자 수녀회ㆍ사도의 모후 수녀회ㆍ사제인 예수회ㆍ대천사 가브리엘회ㆍ성 마리아 영보회ㆍ성 바오로 수도회의 협력자 단체 등 아홉 개의 수도회를 설립했으며 그의 모든 활동은 사도 정신으로 사도직만을 수행한다는데 목적을 뒀었다.
1차 대전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4년 7월「알바」의 케라스카 광장 근처의 집을 세내어「인쇄 기술학교」라는 명칭으로 세상을 향해 그 첫발을 내디딘 알베리오네 신부는 1884년 4월4일 이태리 북쪽 쿠네오 지방의 작은 마을 성「로렌조」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1907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됐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바오로 가족이 탄생하고 계속 성장해 나갈 기를이 될 은총을 받은 때는 그의 신학생 시절인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옮겨지는 역사적인 밤에 이루어졌다.
전 세계가 새로운 세기를 침묵과 긴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순간 알베리오 신부는 악덕 출판물이 난무하던 그 당시 기도로써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자고 모든 신자들에게 간청 한 교황 레오 13세의 뜻을 받든 토니올로氏의 현 시대가 요구하고 또 교회가 바라는 정곡을 꿰뚫는 연설을 듣고 앞으로 자기가 수행해 나가야 할 사명을 결정하게 됐던 것이다.
이후 14년 동안을 오직 기도에만 충실하면서 때를 기다린 그는 30세인 1914년에 첫 수도회를 창설했다.
1918년 화재로 인해 인쇄 기술학교를 몽땅 불태우기도 했던 알베리오네 신부의 초창기 는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인내와 신뢰로써 모든 것을 감지한 알베리오네 신부는 피로를 모르는 일꾼이었으며 말보다 행동이 앞선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 바오로 가족 수도회는 서서히 성장을 거듭했다.
감정에 흔들림이 없는 의지에서 나오는 확신과 신뢰에 찬 모범적인 행동으로 젊은이들 에게 초인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됐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그들에게「삶의 본질」과 삶의 방향의 열쇠가 될「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해 주었다.
1936년 수도회의 총본부를「로마」로 옮김으로써 국내에 국한됐던 성 바오로 수도원 의 활동은 전 세계로 확대됐다
한국에도 1960년 12월 성 바오로 여자 수도회가 들어온 이래 현재 성 바오로 남자 수도회ㆍ스승 예수 제자회 등이 들어와 홍보 수단을 통한 복음 선포에 앞장서 오고 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이 발표되자 기도와 침묵으로 사회홍보 수단 사도직에 대한 사명을 더욱 다지기도 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1971년 11월 26일 교황 바오로 6세의 위로와 강복을 받으며 하느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복음 전파에는 출판뿐만 아니라 새로운 수단으로 등장한 영화ㆍ라디오ㆍ텔레비젼ㆍ레코드 등 모든 것을 이용할 것을 주장,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도회를 방문하고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성사시켜 나갈 것을 격려하기도 했다.
출처 : 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