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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사순 1주일(마르 1,12-13 ; 루카 4,1-13참조)
사순 제1주일(2020.03.01)
마태 4,1-11(마르 1,12-13 ; 루카 4,1-13참조)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말씀 묵상
오늘 복음 안에 사용된 상징은 광야, 40일, 사탄, 3가지 유혹이다.
광야: 구약성경 안에서 악의 활동이 왕성한 곳으로 표현된다. (이사 13,21참조)
또한 광야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장소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장소이며,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하느님의 계획을 성경 말씀 안에서 깨달은 곳이기도 하다.
40: 성경 안에서 40이란 숫자는 한 세대, 또는 인생 전체를 상징한다.
기다림의 숫자이기도 하고, 모세(탈출 24,18)와 엘리야(1열왕 19,8)와 연관된 40일은 하느님 아버지의 얼굴을 깨닫도록 몰두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사탄: 무엇이든지 근본으로부터 갈라 놓는 자, 원수, 적, 난폭자, 고발자의 뜻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서 5, 13-25절에서 이야기 하는 악은 성령을 거스르는 육이다. 그러므로 모든 조직, 사람, 사건 안에 악의 힘은 작용하며, 직접적으로 모든 사람 안에 존재하고 있다.
3가지 비유로 소개된 악마의 유혹: 40은 전 생애를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상의 여정 동안 겪은 유혹을 3가지로 요약하여 전하고 있다. 3가지 유혹이 점점 고도가 높아진다.
첫째 유혹의 장소는 고도가 낮은 광야, 둘째는 성전 꼭대기 셋째 유혹은 고도가 가장 높은 산이다.
첫째 유혹: 빵의 유혹 (물리적인 생명과 관련된 유혹)
- 유혹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 예수님: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빵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뜻한다. 음식, 집, 건강, 직업 등으로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들이다. 악마의 유혹은 오직 물리적인 것만 생각하게 하여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게 한다.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는 성경 말씀으로 유혹자를 물리친다.
이 말씀으로 사람에게는 또 다른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의 칼이다(에페6,17참조).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말씀은 생명의 빵이다(지혜16,26 ; 예레15,16; 아모 8,11; 잠언 9,1-6; 요한 4,34).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살리는 힘은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뜻이다.
둘째 유혹: 명성(명예)에 대한 유혹
- 악마: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 예수님: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몸을 던져 보라’는 것은 명성(명예)에 대한 유혹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능력인 기적을 남용하라’는 요구이며, 하느님을 시험해 보고, 의심을 가지라는 유혹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살아 계신 말씀이며, 살아 있는 성경 내용 그 자체이다.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떠보지 말라”(신명 6,16). 예수님은 아버지와 성령께 믿음을 드린다.
우리도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시험해 보라는 유혹을 받는다. 기도한 다음에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아서 “정말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지, 나를 사랑하시는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신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가 바로 악마의 유혹을 받는 때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이 말씀은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믿는다면 하느님의 결정권에 순종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종이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에 결정권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세번째 유혹: 권력 또는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
- 악마: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 예수님: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악마가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유혹이다. 모든 사람이 누리고 싶어 하는 부귀영화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이사 42,11)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거절한다.
‘세속의 부귀영화를 내가 주겠다’라는 악마의 말은 거짓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악마의 것이란 원래 없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좋은 예다. 솔로몬 왕의 부귀영화는 원래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1열왕 3,13 참조). 그러나 그는 말년에 우상숭배에 빠졌다(1열왕, 11,4-8 참조).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악마를 섬긴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은 하느님에게서 떠나버렸다(1열왕 11,9 참조).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하느님을 찾을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일까? 자신의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서 하느님을 잊어버렸던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왕이 생을 마칠 때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이용하여 의식주를 해결하고, 초능력을 발휘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아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살려고 노력하고,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서로 위해주고 도와주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우월함을 드러내고 남을 압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탐스럽고 우리를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형제 자매는 우리의 경쟁 상대로 보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쉽게 빠지는 유혹이다.
예수님의 최종적인 말씀으로 ‘물러가라. 사탄아’(10절) 구마를 하신다. 성경에서 유혹이라고 말할 때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을 의미한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유혹들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빵만 탐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궁리만 하고, 부귀영화만 쫓아가는 사람의 마음이다. 세상의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을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 안에 둔 사람들이 찾는 것들이다.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은 재물이나 기적이나 부귀영화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하느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환상을 실현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이웃을 형제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서양 속담에 사탄이 유혹하는 네 가지 말이 있다.
- 첫째: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뭐
- 둘째: 대수롭지 않은 데 뭐
- 셋째: 딱 이번 한번 만이야
- 넷째: 아직 앞날이 많으니까.
성찰과 결심
우리 삶의 자리는 늘 유혹 받고 단련 받는 광야와 같습니다.
나는 어떤 유혹에 자주 넘어지는지? 왜 그 유혹을 받는지? 이유와 원인을 찾아가 봅시다.
주님의 말씀으로 유혹들을 물리친 체험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