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제자수녀의 창작 콘텐츠로 도와드립니다!
전례자료실
사순 제 1주일 다해 전례 말씀 묵상
(유혹산 : 예수님이 유혹을 받으신 곳)
사순 제 1주일 다해
제 1독서 신명기 26,4-10
제 2독서 로마서 10,8-13
복음 루카 4,1-13
사순(四旬) 시기의 첫 주일이다. 제의가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자색 제의는 회개와 속죄(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47)를 상징한다. 제의의 색깔이 자색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은 이제 지난 재의 수요일 이후로 사순절(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46)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전 40일 동안을 교회는 사순절이라 부른다.
“사순 시기는 부활 시기를 앞두고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 124) 이 사순 시기 동안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걸은 여정을 묵상하며 다가오는 부활을 준비하자.
다해 사순시기 주일 복음은 루카 복음이다. 사순 제 5주일에만 요한 복음(8,1-11)을 읽는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 다음에 나오는 대목이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가 복음을 시작(마태 1,1-17)하면서 바로 나온다.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으로 끝난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세례 사건과 광야에서 유혹을 받는 사건 사이에 족보를 넣었다. 족보의 시작이 예수님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아담에 이른다.
마태오 복음은 유대인들을 주 독자로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까지 기록했다. 루카 복음은 이방인들을 주 독자로 하기 때문에 인류의 신조인 아담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전 인류의 구세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아담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창세1,26) 루카는 ‘아담을 하느님의 아들’(루카 3,38)이라고 기록했다.
오늘 복음에서 핵심 단어는 유혹이다. 이 단어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님의 기도에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로 나오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보통 세 가지로 번역되는데 시험(test), 시련(trial), 유혹(temptation) 이다. 주님은 이 세 가지 뜻을 광야에서 모두 다 겪는다.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사탄에 의해 유혹을 받으신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행한 일은 광야로 가는 것이었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왜 광야로 보내셨을까? 유혹 역시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의 섭리하심이라는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아(루카 4,18)이시지만, 그저 기름으로써가 아니라 성령(루카 1,26 루카 1,41 루카 2,9 루카 2,27 루카4,1)으로 성별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세 공관복음서 모두 광야 생활을 40일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 탈출 후에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대 탈출’ 즉 새 출애굽이 발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구약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의 그때 그 광야나, 지금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나간 광야나 모두 시험과 유혹의 장소이다.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으려 시나이 산에 올라가 사십 주야를 보냈는데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출애 34,28).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쳤다. 엘리야도 죽음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을 갔다.(1열왕 19,5-8)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극기 생활을 하면서 메뚜기와 꿀을 먹으며 지냈다. 그리고 그는 회개와 세례를 촉구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련되고 엘리야가 단련되고 다윗이 단련되고 그리고 예수님이 유혹 받으신 곳이다. 예수님께서도 모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다. 그렇지만 광야에서의 시험에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이기셨다.
유혹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의 도시 예리코에서 북서쪽으로 3㎞쯤 떨어진 곳에 있다. 유다 광야의 한쪽 끝자락에 있는 유혹산은 해발 350m로,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유혹을 받으신 높은 산을 가리킨다. 하지만 루카복음에서는 ‘산’이라는 표현 없이 그냥 “높은 곳”(4,5)이라고만 표현한다. 루카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유혹을 받으신 곳으로 나온다. 현재 유혹의 산 중턱에는 19세기말에 세워진 정교회 수도원이 있다. 산 아래에서 수도원까지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5분이면 갈 수 있다.
매년 주님 세례 축일이 되면 예루살렘에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 관구가 주최하는 미사가 있다. 주님 세례 축일 미사를 예리고 요르단 강에서 드린 후에 유혹산으로 간다. 정교회 수도회 정문 앞에서 부제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 받으신 대목”의 복음을 2개 혹은 3개의 언어로 봉독하고 강복을 준다. 강복 후에는 수도원 방문을 하고 산을 내려온다.
이 유혹의 산 뒤로 유다 광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예리코에서는 유다 광야가 잘 보이지 않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국도 중간쯤에는 유다 광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광야에서 그분은 3가지 유혹을 받으신다.
첫째 유혹은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루카 4,3), 둘째 시험은 내 앞에 경배하라(루카 4,7), 셋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루카 4,9)
첫 번째 식욕에 대한 유혹이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은 상태였다. 시장하셨다. 그 때 악마가 유혹한다. 악마는 돌이 빵이 되는 기적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악마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대답하신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이 말씀은 신명기 8장 3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광야에서 배고픔을 만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이끌어 낸 하느님을 잊고 불평한다. 이에 하느님은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신명 8,3)이었다.
악마의 두 번째 유혹은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그러기 위해 유혹자 앞에 “경배”하라고 한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오직 우리를 창조해 주신 창조주 하느님 뿐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누누이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다. “너희는 내 곁에 아무것도 만들어 두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자신들을 위하여 은으로 신들을 만들어서도, 금으로 신들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탈출20,2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신명기 6장 13절)
세 번째 악마는 다시 한 번 유혹한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예수님께서는 다시 성경 말씀으로 대답하신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신명기 6장 16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낼 때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불평을 한다. 그러자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서는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곳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고 지었다.(탈출 17,1-7 참조)
요르단과 광야에서 도대체 무엇을 체험하셨기에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선포하셨는가? 그리고 회개를 요구하시는가?
우리는 그분의 인생을 체험하기 위하여 그분처럼 우리 자신을 성령에 맡기어 광야로 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분처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으로 불림을 받았으며, 드디어 남을 위한 죽음으로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체험을 우리의 체험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광야로 안내한다.
마르코나 마태오에는 나오지 않지만 루카 복음서에는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고 덧붙인다. 악마는 항상 다음 기회를 노린다. 그래서 교회는 구마기도의 전통을 갖고 있다. 가장 간단한 구마기도는 물론 성호경이다. 그리고 성당에 들어올 때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바치고 하는 기도가 스스로 하는 구마기도이다. '주여! 이 성수로써 내 죄를 씻어 없애시고 마귀를 쫓아 몰아내시고 악한 생각을 없이 하소서'.
그리고 혼자 혹은 공동체로 하는 구마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또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악마의 유혹에 맞서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중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말씀이라는 무기로 물리치고 이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