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가~득한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봉헌!
축성 봉헌의 삶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상의 호의가
주님을 따르려는 우리 삶을 떠받쳐 주시는,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축성 봉헌 생활은....
우리보다 크신 분,
우리의 생각을 까마득하게 뛰어 넘으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하느님의 것'이 되어가는 삶입니다.
숨은 듯 낮은곳에서 우리 삶의 배경으로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봉헌생활의 핵심은 무엇인가?
반드시 봉헌생활을 서약하지 않더라도 사랑과 복음화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시급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이면 왜 이러한 생활을 해야 하는가?
봉헌생활은 더 큰 선익을 위하여, 인류와 교회를 위하여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의 “낭비”가 아닌가?
....
그러한 질문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복음서에 기록된 베타니아의 향유 이야기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요한 12,3).
이에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돈을 그렇게 낭비한다며 불평하자,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요한 12,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따르도록 귀중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해야 하며
그분께 단순히 일정한 행동 또는 특별한 경우나 활동이 아니라
전 생애를 봉헌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사랑의 행위로 쏟아 부은 마리아의 값진 향유는
모든 “실용주의적” 사고를 초월하는 가없는 헌신의 표징이며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봉헌으로써 주님과 그분의 신비체에 헌신하는 생활로 표현됩니다.
남김없이 “쏟아 붓는” 그러한 삶에서 온 집 안을 가득 채우는 향기가 풍깁니다.
하느님의 집, 곧 교회는 오늘날 과거와 마찬가지로 봉헌생활의 현존으로 한층 돋보이고 부요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 낭비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아름다움과 좋으심에 마음 깊이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성자를 알고 세상 안에서 그분의 성스러운 사명에 동참하도록
특별히 받아 들여진 데 대한 명백한 사랑의 응답이요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이 하느님의 사랑,
창조되지 않으신 하느님, 말씀이 되신 하느님,
수난을 당하신 하느님,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을 알고 체험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완전히 그분께 바칠 것이고,
피조물은 물론 자기 자신을 버리고
지극히 사랑하올 성자 예수님으로 완전히 변모되기까지,
전존재로써 이 사랑의 하느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 성 요한바오로2세 교황 '봉헌생활' 104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