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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사순 제 2주일 전례 말씀 묵상
(사진- 예수님 무덤 성당 정문 : 사순시기 주일 합동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장엄 입당하는 총대교구장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행이 도착하면 문이 열립니다.)
나해 사순 제2 주일
1독서: 창세기 22,1-2.9ㄱ. 10-13. 15-18
2독서: 로마 8,31ㄴ-34
복음: 마르 9,2-10
제1 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합니다. 지난 사순 제 1주일 복음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는 것보다 더 가혹하고 잔인한 모습입니다. 아브라함한테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늙어서 얻은 외아들입니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하느님이 계약의 말씀(창세기 17, 5-8 참조)으로 직접 주신 아들인데, 그 아들을 봉헌하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언약을 하십니다. 새로운 언약입니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손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심으로써 하느님이 약속하셨던 후손들의 번성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입니다. 또한 그 후손들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인간의 믿음을 통해 당신 백성들이 복을 받고 누리도록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의 사명은 선택된 본인 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빛과 은총과 축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세에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보다 앞선 신앙의 선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셨는지 보았습니다.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느님의 마음은 그 외아들을 통해 드러난 신앙을 바탕으로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외아들’의 진가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자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이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권한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기도하시려고 외딴곳에 가시곤 하셨습니다. 혼자도 가셨고, 제자들과도 함께 가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동행한 제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입니다. 이들만을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장소도 언급되었습니다. 높은 산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집니다.
첫 번째 사건은 데리고 간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십니다.
두 번째 사건은 엘리아와 모세가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세 번째 사건은 두 분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모두 겁에 질렸습니다.
성격이 급한 베드로가 먼저 나섭니다.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말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네 번째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다섯 번째 사건은 그들 앞에 벌어지고 있었던 모든 일이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는 이해 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 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언급되지만 제자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요?
성 바오로 사도도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본인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3,11)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이 희망을 차지하려고 달려갑니다.
오늘 변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성 바오로 사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희망과 새 생명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당신의 죽음을 통한 되살아남이 당신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1독서에게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이 보내신 외아들을 통해서 그의 모든 자녀들이 복, 생명의 복을 누리리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자들로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그분들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은 모든 예언서와 율법의 완성자이십니다. 글로 적혀 있었던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졌던 말들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을 따르는 목적이 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으며(로마 6,4 참조) 그분을 직접 뵙는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과 같이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로마 6,8 참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한 첫 사람”(콜로 1,18)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우리 영혼을 의화시키심으로써, 장차에는 우리 육신을 다시 살리심으로써(로마 8,11) 우리 자신의 부활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카톨릭 교리서 658항)
입당송에서처럼 우리의 외침이 주님께 도달하도록 합시다: “주님, 당신 얼굴을 찾으라 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시편 27(26),8.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