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이신 하느님
광주 벗 정영자 세실리아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나 사랑하는 수녀님들과 벗님들께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림에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의 기승으로 암울했던 2020년 한해도 지나고 벌써 ‘하얀 소’의 해(年)라는 2021년이 시작된 지도 두 달이 넘어서고 있네요. 감염병과 사회의 분위기 때문인지 설렘 없이 오늘 하루가 우리 곁을 스치듯 흘러갑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마치 아픔과 고통, 어두움을 묻어버리기라도 하듯,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습니다. 하늘에서 뿌려 주시는 축복의 꽃송이같이 말이죠. 올 2021년 한 해도, 우리가 모두 소처럼 어리석을 만큼 우직하고 순하고 부지런하게 각자가 맡은 바 임무를 최선을 다해 실행하고 사노라면, 머지않아 행복한 날을 맞이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난 1월, 이슈가 되었던 정인이의 죽음을 보면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과 죽임을 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가녀린 생명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한 이들이 사랑을 선포하고 실천해야 할 목회자라는 사실은 세상을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도움을 청할 때는 외면하고 돌보아주려 하지 않던 어른들이 ‘정인아, 미안해, 사랑해.’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는 모습을 보니 주님께서는 얼마나 이 세상을 보며 마음 아파하실지….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손 내밀면 사랑으로 감싸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기도를 드려봅니다. 많은 날을 제자 수녀님들 벗님들과 함께하면서 넘치는 사랑과 기도에 힘입어 조금은 성숙한 모습으로 지금에 이르러,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때로는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성모님 치맛자락 꼬옥 붙들고 손에 든 묵주로 한알 한알 성모송을 읊다 보면 어느새 백 단을 넘어서는 날이 많게 되었습니다. 매단 마다 여러 가지 지향과 사제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바칩니다. 이제는 일상에서 묵주가 없으면 손도 마음도 허전할 만큼 저의 힘이며 무기가 되어버렸고, 세례 때 주님과 이곳 수녀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약 세 번, 신약을 네 번 만나고 나니 이젠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모든 은총으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내 집 문을 두드리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실 것이라도 내어 주는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칠십 계단을 넘어서 머리엔 하얀 눈이 내려앉아, 어느 날 갑자기 천국으로 가는 표을 들고 하늘나라로 소풍을 하러 갈 때, ‘세실리아. 잘 살았다.’ 하시며 주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는 꿈을 가끔 꾸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의 희망이신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걸어가 봅니다. 수녀님들 벗 회원님들 새해에는 뜻하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