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성월을 맞이하여
이명숙 M.만수에따 수녀
해마다 순교성월이 다가오면 과연 오늘의 시대에 ‘순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순교를 어떻게 살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고 자문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사 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김해 김씨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증조부 김진후가 ‘비오’라는 세례명으로 성세성사를 받으며 천주교 집안이 되었으나 1791년 신해 박해 때 체포되어 1801년 유배되며 집안이 몰락하였습니다. 김진후 비오는 1805년 해미에서 다시 체포되어 10년 동안 옥고를 치른 끝에 1814년에 옥에서 순교하였고, 작은 증조부 김한현 안드레아는 1816년 대구 감영에서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참수 순교하였습니다. 1821년 8월 21일에 태어난 김대건은 여러 차례에 걸친 교난으로 집안이 어수선하였지만 중국에서 곧 오신다는 신부님으로부터 정식으로 세례를 받고 싶어 1836년 4월 나 모방 베드로 신부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사제가 되었지만, 서품받은지 1년도 채 안 되어 26세의 짧은 생(生)으로 천주교를 금하는 나라의 법에 붙잡혀, 주님께 이 땅의 첫 순교 사제로 봉헌되었으니 안타까움과 감사함으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영화화한 ‘저 산 너머’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참된 민주화 이전의 어둡고 어려웠던 시대인 7, 80년대에 진정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민주화의 초석이 되어주셨고, 모든 이의 삶의 본보기가 되어 주셨던 분이었기에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가슴으로 와닿았고, 마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듯 정감있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겪으셨던 박해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빛 하나만을 의지한 채 조심조심 그 신앙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나가는 그래서 급기야는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선조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 우리가 마음껏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축복이 얼마나 많은 이의 피와 땀이 녹아있는 값진 유산인지 깊이 깨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추기경님의 어머니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면서 생활고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도 자신의 노고를 앞으로의 편안한 삶으로 보상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주님께 두 아들을 봉헌함으로써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신앙의 불씨를 계속 소중하게 간직해 나갑니다.
그러고 보면 생활의 순교란 이렇게 일상의 많은 어려움을 주님을 위해 봉헌하면서 그 어려움이 단지 고통만이 아닌 또 다른 기쁨으로 변화한다는 부활체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첫 서원을 발하면서 로마서 12장 1절에 나와 있는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라는 말씀으로 저의 서원 동료들과 함께 제자 수녀로서의 삶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런데 박해시대가 아닌 지금의 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순교의 의미는 매일의 삶과 생활 태도를 하느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편리함이 일상화된 이 시대는 자칫하면 하느님을 잃어버리기 쉬운, 그래서 본질적인 것보다는 부수적인 것에 현혹되기 쉬운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존재 자체, 즉 우리의 생명과 가족, 이웃과 자연의 소중함에 머물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시선을 두기도 합니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기보다는 남들과 비교함으로써 발생하는 상대적인 상실감으로 인해 무엇인가 더 채우려 하고, 현재에 머물기보다는 끊임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려 하며 현재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박해시대 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하느님을, 신앙을 선택할 수 있었던 용기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내 안에, 가족 안에, 이웃 안에, 자연 안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고 그 소중함에 감사하며 새롭게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 바쳐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더 풍요롭게 열매 맺으리라 생각합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 3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