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씨앗
대구분원 우정희 프란치스카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특별한 어둠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그래서 오히려 그 소중함을 잊은 채 살아온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해성사를 보지 못하고, 성체를 영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의 박해 시대 때 모습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의 공소 순방 소식을 들으면 신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그 먼 곳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한겨울의 언 몸으로 공소를 찾았다고 합니다. 또 산골 깊은 곳의 교우 촌 신자들은 성사를 받기 위해 하루 동안 100여 리를 걷기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순교자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 우리보다는 어떻든 더 강하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평화방송을 통해 미사참례를 하면서 신령성체 기도를 바칠 때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안타까움과 서러움에 눈물을 머금곤 했습니다. 신앙 선조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참으로 멀고도 험악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재촉했을지 다시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동안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는 것이 하느님의 큰 사랑과 은총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는지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미사 중단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지 못했던 동안 제가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바람보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영적 양식에 굶주린 제가 저 자신을 낮추고 당신 계명을 잘 지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당신 자녀를 홀로 두지 않으심을 체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순교자들의 증거 덕택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AD160~240)교부의 말씀처럼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피로써 뿌린 신앙의 씨앗이 우리 안에서 뿌리를 내려 이만큼 자라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약 100년간 지속된 참혹한 박해 속에서 기꺼이 순교했던 믿음의 증인들, 그들의 증거에 힘입어 남은 신자들은 그 영광된 죽음을 동경하며 순교 정신을 발전시켰습니다.
순교자의 피가 신앙의 씨앗이 되어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듯이 저도 또 다른 신앙의 씨앗이 되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듭니다. 이제는 하느님께 뭔가 해달라고 자꾸 청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랑하는 삶, 용서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말이나 생각처럼 쉽지 않은 삶임을 잘 알기에 기도 중에 주님께 오롯이 의탁하고 도움을 청하며 더디고, 자주 넘어지는 걸음걸음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 내디디며 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나약하고 부족한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괜찮다 격려하시며 손잡아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