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러분의 사랑을 숨겨둘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성소에 맞갖게 표현하고 전파하십시오.
(복자 G.알베리오네)
(복자 G.알베리오네)
강원도가 더 가까운 여주의 보석, 강천면 도전3리
"자연속에 살다보면 돈보다 소중한 걸 알게돼..."
2007/03/19 [23:50]
“도전리에 원주민이 많습니까 외지인이 많습니까?”
원심이로 불리우는 3리 이장 강인택씨는 “들어오는 사람들은 알겠는데 나가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으니 모르긴 몰라도 외지인이 더 많아졌을것”이라고 답한다.
▲ 무두치고개에서 내려다본 도전리 원경
도전리는 여주의 아웃사이더이다. 그도 그럴것이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에서 경기도 여주군으로 편입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도전리 주민들 중에는 여전히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도전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저 남도지방의 사투리부터 애교섞인 서울 사투리까지 이 나라 전지역의 사람들이 쓰는 억양들을 고루 맛볼 수 있기도 하다. 그만큼 도전리에는 여주 토착민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다. 실제 인구수는 따져보지 못했으나 피부로 느끼는 비율은 원주민대 외지인이 40대 60정도가 아닐까 한다.
▲ 도전리를 포함한 강천면은 오래전 강원도 원주군 관할이었다
도전리는 여주 아니 한국의 리우데자네이루
1960년대까지 브라질의 수도였던 아름다운 항구도시 리우데자네이루는 거대한 예수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 위에서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선 리우의 예수상은 영화나 드라마, 각종 cf 등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상징처럼 되었고, 그 유명한 상징 하나가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리우를 멋진 관광도시로 여기게 만들었다.
도전리 관모봉에는 리우의 예수상에는 못미치지만 도전리 어느곳에서나 잘 보이는 거대한 예수상이 서 있다. 높이 15미터 정도의 이 하얀 예수상은 “스승예수”라 불리우는데 원심이 주민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한다. 주민 김모씨는 “스승예수상을 산 위에 세우려고 마을주민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 몰라. 그래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마을 축제나 마찬가지였지..”라며 당시의 추억을 회상했다.
▲ "우리도 마을주민이라구요" 수녀들도 함께했던 2006년 면민의날 행사
영성의 향기를 가득 품은 가톨릭 공동체
도전리에는 스승예수상을 비롯, 가톨릭의 상징인 성모자상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도전리로 진입하는 북내면 당우리에서부터 도전리가 끝나는 지점인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까지 이어진 도로상에는 샌뽈수녀원, 라파엘의집, 성바오로 딸 수도회, 스승예수의 제자 수녀회, 파티마의 성 프란치스꼬 수녀회 등이 포진하고 있어 가히 가톨릭의 성지라 불리울 만한 곳이다.
도전 4개리 중 3리와 4리는 주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조선시대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산속 마을로 숨어든 신자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도전리에 살기 위해 찾아드는 외지인들의 90%는 신자들이다. 날마다 새벽이면 수녀원 성당에는 주민들이 넘쳐난다. 작은 마을이지만 여주 가톨릭의 요람이라 할 만하다.
여름반, 겨울반 곰돌골 상수원에 드리우는 개발의 그림자
도전리에는 봄가을이 없다. 물론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운 봄꽃들과 가을 단풍을 맘껏 맛볼 수 있지만 산골인 탓에 겨울이 유난히 길다는 뜻이다. 여주읍에 비가 내릴 때 도전리에는 눈이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겨울이 길고 추운 대신 더운 여름철 도전리는 그 어느 곳보다 시원한 편이다. 특히나 원심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곰돌골은 한여름 오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여 여름철 주말이면 아침나절부터 자리잡기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곰돌골 상류는 도전3리 주민들의 상수원이다. 그 곳 곰돌골에 몇해전부터 개발업자들의 발길이 잦다.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개발업자들은 곰돌골 상류의 임야를 대규모 전원주택단지로 개발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단다.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곰돌골로 통하는 마을 중심도로를 없애는 것. 도로의 대부분이 주민들이 조금씩 내놓은 땅이기에 주인들이 자기 땅을 찾아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도로가 사라지고 만다.
많이 불편하겠지만 주민들은 해당 안건을 마을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난개발의 열풍을 잠재우려 자기희생마저 감수하려는 도전리 주민들의 자연보전 의지는 해마다 들려오는 각종 개발의 소문들과 “돈”이라는 유혹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굳건한 듯 보였다.
▲ 곰돌골은 한여름에도 서늘해 피서객들이 줄을 잇는다
마을회관은 늘 북적북적
도전리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문막 접경인 1리 탑전동에서 2리 전거론을 거쳐 3리 원심동과 4리 중평, 됫대까지 여느 시골마을과 다름없이 노년인구가 많다. 하지만 도전리에는 젊은이도 많다. 특히 300여명의 방대한 인구를 자랑하는 3리의 경우 수녀원이 세 개나 위치하고 있어 젊은 수녀들이나 피정(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등을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곰돌골쪽 새말에는 전원주택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비교적 젊은 부부들과 학생들도 제법 눈에 띈다.
도전리 마을회관은 언제 들러도 시끌시끌하다. 혼자 지내는 노인인구가 많다보니 손 꼭 잡고 마을회관에 들러 함께 기도를 하거나 화투놀이등을 하기도 한다. 비교적 젊은축에 드는 4-5십대 주부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회관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꼭 식사를 권한다.
여주에서 열차이용이 가능한 몇 안되는 마을
▲ 원심동 표지석
도전리 주민들의 여주에 대한 애정도는 얼마쯤 될까? 주민들의 이야기속에 문막읍이나 산넘어 판대마을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도전리는 문막 생활권일까?
얼마전 됫대마을에서 양동으로 뚫린 도로로 문막보다 양평군 양동면이 가까워졌으니 이제는 양동 생활권일까? 다행히도 도전리 주민들의 여주에 대한 애정도는 상당하다. 장을 보는 것도 북내나 여주로 나가고, 모든 의식주와 의료문제 등의 해결 역시 여주를 이용한단다. “기왕이면 여주세수에 도움을 줘야지”라는 것이 젊은 이장의 일갈이다.
양동과 됫대를 연결하는 도로가 뚫린 뒤 도전리 주민들은 서울에 나가거나 할 때 중앙선 열차 양동역을 종종 이용하고 있다. 여주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도전리인 셈이다.
여주를 등지고 문막으로 열린 지형의 도전리는 경기도에 편입된 지 110여년 밖에 안된 곳이다. 북내로 넘어가는 무두치고개 아래가 됫대(도성동)라 불리우는 4리이며, 문막과 접경한 탑전동이 1리다. 그 사이에는 4리의 중평동과 도전리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3리 원심동, 그리고 전거론 혹은 전거원리로 불리는 2리가 위치해 있다.
도전리라는 이름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도성동과 전거론에서 앞글자를 따와 만들어진 이름이다. 천혜의 요새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도전리, 마을의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연속에 살다보면 돈보다 더 소중한 게 뭔지를 알게 돼...”
▲ 곰돌골의 봄...2006
늘 눈부신 자연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순진한 도전리 주민들은 최근들어 여주에 부는 “규제철폐와 개발”이라는 이름의 악령이 무두치고개를 넘어오지 못하고 돌아가주기만 바라고 있는것은 아닐까?
강수천 기자
출처 : 세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