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연중 제 22주간 토요일 ) 성 김대건 신학생의 일곱 번째 편지-2
2주간 - 같은 그리움을 지닌 이들의 도움 : 진흙 길에서 만난 손길
<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 : "온갖 위험을 감수하시는 김대건 신부님의 순명입니다." >
저는 포졸들의 손아귀를 피하기가 지극히 어려웠고, 만일 잡히는 경우에는 제 몸에 지닌 돈만 보더라도 도둑의
혐의를 받아 사형을 받게 될 염려가 있었습니다. 도둑은 국법에 의하여 모두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해가 뜬 다음에는 감히 길에 나서지를 못하고 수목이 울창한 산속에 숨어 있다가 해가 떨어져 어둠이 땅을 내리덮
었을 때 걸음을 재촉하여 새벽 2시쯤에 의주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서 바다오 반대쪽에 있는 읍 왼편으로 방향을 정하여 길도 없는 험악한 곳을 헤매었습니다. 이런 곳에도 사방에
지붕이 보이기에 저는 국경 수비대로 여겼습니다.
제가 압록강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써 해가 떠올라 사방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첫째 강과 둘째 강을 건넌 뒤에 황막한
들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가는 도중에 중국 의복으로 갈아입느라고 나머지 한나절을 다 소비하였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약 백리 길을 걷고 나니 해가 떠올랐습니다. 계속 길을 걸어 저녁때가 지나 변문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과 동정 성모님의 보호하심으로 몇 가지 물건을 마련하고 5일 만에 백가점에 도착하여 공경하올
메스트르 신부님에게로 되돌아왔는데 이날이 1월 6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3월에 프란치스코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평온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정은 신부님들의 편지를 보시면
더 자세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전에 정성껏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공경하올 스승님께, 순명하는 아들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요동(백가점)에서, 1843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