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러분의 사랑을 숨겨둘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성소에 맞갖게 표현하고 전파하십시오.
(복자 G.알베리오네)
(복자 G.알베리오네)
[2011 환경의 날 특집] - 소박한 삶
자연 순리 따르는 단순한 삶, 지구도 사람도 살린다
2011.06.05 발행 [1120호]
양복 네 벌로 검소한 삶 사는 사제, 입지 않는 옷 나눠 환경 보호하는 본당
직접 키운 채소로 채식 식단 실천하는 가족, 생태적 삶은 자연과 벗하는 삶
성당, 수도회 친환경 시스템 도입 앞장 '비움의 삶' 실천은 지구 살리는 길
정 바오로(52)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연료비 때문이다. 그는 매일 출퇴근 때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하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 데 7~8만 원이면 충분했던 기름값이 요즘은 12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갈수록 오르는 유가 때문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고민하고 있다.
홀몸노인인 김씨(78)는 지난 겨울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루 8시간을 사용해도 월 전기요금이 4900원이라는 TV 광고를 보고 전기난로를 샀는데, 전기 요금이 50만 원이 넘게 나왔던 것. 광고를 철석같이 믿었는데, 광고는 전기에 누진요금제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누진요금제는 1~6단계로 나뉘며, 최대 11.7배까지 요금 차이가 난다. 전기요금을 줄이려 난로를 샀던 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들 사연은 모두 석유 문명 시대에 사는 우리 현실에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환경의 날(5일)을 맞아 과다한 에너지 및 자원 사용을 반성하면서 그 대안으로 지구를 살리는 '소박한 삶'에 대해 살펴본다.
#어떻게 입을 것인가?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인 모 신부는 신자들 사이에서 '단벌 사제'로 통한다. 미사 때 입는 제의야 전례력에 따라 모두 갖췄지만, 평소 입는 양복은 여름용과 겨울용 각각 2벌씩 뿐이다. 같은 색 같은 무늬라 신자들은 옷이 한 벌만 있는 줄 안다. 현재 입는 양복 아닌 또 다른 한 벌은 세탁 때 바꿔 입을 여분의 옷이다.
그 신부는 평소에 "청빈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할 사제가 양복 네 벌이면 충분하지 다른 옷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네 벌이면 평생을 지낼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입지 않는 옷과 사각 보자기로 사랑나눔 및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본당이 있다. 서울 수유1동본당 생명환경분과(분과장 진영숙)는 신자들에게 '남는 옷이 있으면 성당에 가져오라'고 요청한다. 필요 없는 옷과 안 입는 옷 등을 모았다가 외국인노동자 쉼터 등과 같이 꼭 필요한 곳에 전하기 위해서다.
본당은 또 신자들에게 집집에 한두 장씩은 있는 보자기를 기증받는다. 이렇게 모은 보자기는 본당 매장에서 친환경 먹을거리와 생활용품을 판매할 때 비닐봉지 대신 사용한다. 보자기로 예쁘게 묶어 선물하듯 상품을 판매하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즐겁다. 덤으로 환경도 보호하니 일석이조다.
천연염색 옷을 입는 것으로도 환경을 보호하고 아토피 피부염 등을 예방할 수 있다. 대규모로 생산하는 기성복은 화학염료로 염색하는 데 반해 천연염색 옷은 자초와 쪽, 홍화 등에서 채취한 천연염료로 염색한다.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가공시 염색 폐수를 발생시키지 않고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데다 표백제 등을 쓰지 않아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인 이순미(아녜스, 52)씨는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 산다. 그의 집 마당에는 상추와 고추, 치커리 등 다섯 종류의 푸성귀가 자란다. 가족들은 그가 키운 채소를 위주로 반찬을 해먹는 '채식 가족'이다.
한창 고기를 좋아할 27ㆍ29살 두 아들도 가능한 한 식사시간에 맞춰 귀가해 채소 반찬을 먹는다.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햄버거와 라면 등 인스턴트식품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엄마표 도시락을 먹었고, 라면을 먹으면 1000원씩 벌금을 물었을 정도다.
이씨는 그 밖의 음식재료는 도농 직거래를 통해서나 하늘땅물벗에서 판매하는 친환경 유기농 제품으로 산다. 가톨릭 농민이 길러 믿을 수 있는 유기농 식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음식은 되도록 조금씩 마련해 남김 없이 먹는다. 설거지할 때는 쌀뜨물에 EM(유용미생물) 용액을 섞어 그 물로 씻는다. 조금씩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EM 용액을 섞어 마당 나무 옆에 묻으면 자연스레 퇴비가 된다.
이러한 식생활 덕분에 그의 가족들은 모두 건강하다. 특히 두 아들이 잔병치레가 없어 이웃들 사이에서 '건강보험증 깨끗한 집'(진료기록이 없다는 뜻)으로 불린다.
'소박한 삶'에 대해 이씨는 "하느님이 주신 그대로 피조물과 친구처럼 사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생태적 삶은 특별하고 어려운 삶이 아니며, 어린 시절 고향에서 뛰놀며 자연과 벗하던 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서 살 것인가?
강원도 홍천에 사는 이대철(프란치스코, 67)씨는 국내 최초로 에너지가 필요 없는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지어 올해 녹색기후상 대상을 받았다. 그의 집은 보온과 단열이 잘 돼 지난 겨울 영하 20℃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많았던 강원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난방 한 번 하지 않았다.
보온병 원리와 같이 외부에서 얻은 태양열을 오랜 시간 집안에 가둬 그 온도로 난방한다. 단열과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해 여름에도 무척 시원하다. 보온용 창문 대신 스티로폼 등 단열재를 많이 사용하고, 되도록 창문을 작게 함으로써 건축비용을 줄였다. 그 결과 에너지 상식을 깬 그의 집에는 매년 6000여 명이 견학을 오고 있다.
성당과 수도회 등에서도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를 위한 실천이 눈에 띈다.
2005년 12월 30㎾ 규모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갖추고 성전과 교육관, 야외 가로등을 발광 다이오드(LED) 전구로 교체한 서울 목3동본당(주임 황흥복 신부)은 예전에 비해 전기 소비량이 70~80% 줄었다. 발광 다이오드 소비 전력은 기존 백열전구의 20% 수준에 불과하며, 수명은 100배나 길다.
수원가톨릭대(총장 이용화 신부)는 지열시스템을 도입해 유류비를 연 5000만 원 정도 줄이고 있으며,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서울 총원 역시 지열시스템으로 에너지 절감과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고, 태양광 난방시설도 갖췄다. 전주교구 부안본당(주임 현유복 신부) 교육관과 등용리본당(주임 조민철 신부) 옆 부안시민발전소는 총 44㎾ 규모의 태양광ㆍ태양열 발전시설로 전기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한국관구와 광주ㆍ대구ㆍ부산 등 분원에는 에어컨을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지구 온난화를 막고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녀회 모든 건물들은 난방만 된다. 수녀들은 공동체가 모일 때 외에는 선풍기도 쓰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을 달랑 부채 하나에 의지하고 지낸다.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수녀들은 복음적 삶을 위해 공동체 안에서 '비움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느님 뜻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이 수녀회 소속인 가톨릭건축사사무소 대표 황원옥 수녀는 "우리 수도회 수녀들은 비움의 소통이야말로 상생이라 여기며 비움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영적 삶을 갈망한다"면서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계획성 없는 소비와 채우고자 하는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총무 양기석 신부는 "많은 이들이 '물질적 부를 포기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지 못한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몸에 젖은 습관을 버리고 가진 것을 가난한 이와 하느님께 돌리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