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밑그림 119- 영원한 삶과 참된 이웃
한 번 뿐인 우리네 삶을 후회 없이 가치 있게 살고자 노력하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영원히 사는 삶(=영원한 생명)”에 관한 물음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당대의 최고의 스승으로 인기를 한창 얻고 있는 나자렛 출신 예수가 예루살렘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는 ‘내, 노라’ 하는 율법 교사들이 비상이 걸려, 예수보다 박학함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인간의 뼈가 248개라고 알고 있었답니다. 율법 교사들은 인간의 뼈마디 숫자대로 248개의 실천계율과 일 년이 365일을 감안하여 백성들에게 매일 한 개씩 하지 말아야 할 금령을 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모두를 합치면 율법 법규가 모두 613 조항 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율법 조항 중에 ‘어느 조항이 가장 으뜸 조항이냐, 첫째가는 계명이냐’라고 율법 교사가 묻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 분명합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는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가장 큰 계명, 또는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전해줍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니 인간이 만들어낸 613개의 법조항 중에서가 아니라, 신명기와 레위기의 말씀을 들어, 하느님께서 주신 법을 그들에게 먼저 상기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라고 ‘너희들이 매일 아침 ․ 저녁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는 듯합니다. 그리고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의 이웃사랑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리키는 이웃의 의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었고, 후대에 조금 발전한 사상은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들까지를 이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의 초점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인 동족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임을 가리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 법조항(고정관념)에 얽매인 유다인들에게 이웃에 대한 율법의 근본적인 의미로 확장시켜 주십니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루카복음에서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유다인들이 어떻게 이 으뜸가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확대 해석해 줍니다. 마태오와 마르코에서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을 하신 것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루카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율법교사 스스로가 답을 하도록 예수님께서 반문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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