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8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1844년 12월 15일 소팔가자에서 페레올 주교님께 보낸 김대건 부제의 아홉 번째 편지입니다.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은 신앙과 선행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그 주막을 떠나 덜 험한 길을 골라 가느라고 어느 때는 언강을 건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강 오른쪽이나 왼쪽 기슭을 따라가기도 하였습니다.
좌우로 거대한 수목이 울창한 높은 산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호랑이, 표범, 곰, 늑대와 그 밖의 사나운 짐승들이 살고 있어 지나가는 행인을
습격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무서운 산간벽지를 혼자 지난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어서 얼마 못 가서 맹수의 밥이 되는 불행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번 겨울 동안만 해도 80명 이상의 행인과 백 마리 이상의 소와 말이 맹수에게 잡혀 먹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인들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무리를 지어 다녀야 합니다. 우리도 역시 적을 압도할 만한 강대한 군대를 편성하여 행군을 하였습니다. 도중에 때때로 맹수들이 굴에서 나타났지만
우리 일행의 당당한 위용을 보고는 감히 덤벼들지 못하였습니다.
짐승들이 사람을 습격하니 사람들 역시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워 맹수를 섬멸할 작전을 폅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황제가 많은 사냥꾼을 이 산림지대
로 보내는데, 지난해에는 그 수가 5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용감한 포수 중에는 언제나 그 용맹 때문에 생명을 대가로 치르는 자도 있다고 합니
다. 우리가 지나갈 때도 포수들이 동료 한 사람의 시체를 천리 밖에 있는 고향 땅, 조상의 묘지가 있는 데로 옮겨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싸움터에서 명예롭게 쓰러진 것입니다. 짐승을 잡은 보람이 있어 관 위에는 사슴뿔과 호랑이 가죽 등이 전리품으로 자랑스럽게 실려있었습니다.
장례 행렬의 인도자는 한길에 종이로 만든 돈을 이따금씩 뿌리고 가는데, 죽은 자의 영혼이 그것을 주워 저 세상에서 쓴다는 것입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신앙과 선행만이 저 세상에서 통하는 진짜 돈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편지 소팔가자에서, 1844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