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제자수녀의 기쁨을 나누어요!
김대건 신부님 서한 묵상집
2021년 9월 11일(토) 연중 제 23주간 토요일
1844년 12월 15일 소팔가자에서 페레올 주교님께 보낸 김대건 부제의 아홉 번째 편지입니다.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은 하느님의 인자하심에 의탁하는 굳건한 믿음입니다.
조선 신자들로부터 박해가 멎은 다음 조선 교회는 비교적 평온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해의 폭풍우가
덜 몰아친다고 생각하는 남쪽 지방으로 피신한 신자들도 많고, 천주교에 입교한 가족들도 많다고 하였습
니다. 신자들이 서양 선교사를 오랫동안 그들의 집에 모셔두기는 어려운 실정이지만 하느님의 인자하심
에 의지하여 선교사를 영입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답니다. 선교사들을 조선으로 모셔 들이는 데는 훈
춘보다 변문이 덜 위험할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훈춘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들어오면 국경을 넘어오는 위
험 외에도 조선(함경도) 전체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우리는 이별하려고 손을 마주잡았습니다. 그들이 흐느껴 울어서 굵은 눈물이 뺨을 타
고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읍내로 들어와 군중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교회를 수호하는 천사에게 경의를 표하고 조선 순교자들의 기도에 의탁하면서 두만강을 건너 달단 지방
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얼음 위를 미끄럼 타며 왔던 강이 한창 녹고 있었습니다. 높은 산 위
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로 인하여 물이 불은 강에는 잡동사니와 묵은 나무등걸과 굉장히 큰 얼음덩어리
들이 마구 뒤섞여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여행자들이 마차를 끌고 자꾸만 모여들어 강가가 혼잡하였습니다. 군중이 외치는 소리와 맹수들의 울음
소리 그리고 강물이 흘러내리는 요란한 소리가 한데 뒤섞여 산골짜기를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광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무도 이 위험한 강물 가운데로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내기 못하였습니다. 해마다 이 강을 건너다가 얼음
밑에 깔려 죽은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저는 건나
갈 만한 곳을 찾아서 강을 건넜습니다. 저의 동행은 좀 더 신중해서 물길을 잘 아는 안내인을 고요하여 멀
리 돌아서 무사히 건넜습니다. 우리는 말 한 필을 잃어버린 손해밖에는 보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께, 지극히 순종하고 부당한 아들 김해 김 조선인 부제가 절합니다.
아홉 번째 편지 소팔가자에서, 1844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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