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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사순 제 3주일 전례 말씀 묵상
나해 사순 제3 주일
1독서: 탈출 20,1-17
2독서: 코린 1,22-25
복음: 요한 2,13-25
오늘 미사는 두 종류의 입당송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입당송은 에제키엘서 36,23-26 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어, 온 세상에서 너희를 모으리라.”
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요! 그 분 스스로 우리를 모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거룩함이 우리 눈과 마음을 고정시켜 그분께로 향하게 합니다. 그분을 맛들인 사람들은 그분의 거룩한 빛과 향기를 알아봅니다. 마치 양들이 목자를 알아보듯이, 개들이 주인을 알아보듯이 말입니다.그분은 모아진 우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모든 부정에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우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리라고 약속합니다.
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역사가 언급됩니다. 그들만의 고유한 구원 역사가 펼쳐집니다. 그 속에 하느님과 선택된 그 백성들만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 비밀의 일부가 오늘 펼쳐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고통이 신음으로 변할 때는 의지로 감당하기 어려운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옵니다. 이 때 육신의 바람은 오직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다 하려고 합니다. 이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약에 충실하기 위한 계명을 주십니다. 그들에게 표현된 하느님의 속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바란 희망이었습니다. “하느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 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한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 같은데 하느님께서는 계명으로 주십니다. 하느님 자신에 대한 계명입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건,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어떤 신앙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호칭 중 제일먼저 당신 스스로 주신 호칭은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라는 호칭입니다.
“하느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십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주신 계명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강복한 날입니다. 다른 날과는 다른 날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사람이 아닌 ‘날( )’ 이라는 자연에 강복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강복한 것 속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 빛으로 인해 거룩함으로 물들어 갑니다.
그 외에도 우리 인간들이 서로 지켜야 할 계명을 주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세 부류의 민족이 있습니다. 유다인, 그리스인, 그리스도인 입니다. 많은 유다인,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선포할까요?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나약한 인간이 하느님의 힘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하여 예수님, 성부의 아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하느님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더 지혜로웠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죽음으로 “인류”를 회복하고 “인간”들을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보다 더 강한 하느님의 약함이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일이 가까워 진 때입니다. 매년 예루살렘을 갔었지만 이 때는 마음에 수 십 가지 감정이 교차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방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장사꾼들이었습니다. 성전에 봉헌 할 봉헌물을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입니다. 기도의 집이 시장이 되어 버린 모습을 본 예수님의 마음은 갈기 갈기 찢어집니다. 그들을 모두 밖으로 쫓아냅니다.
이것을 바라본 유다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은 예수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성전은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성전의 의미를 유다인들이 알리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이 말의 뜻을 알고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도 다른 곳에서처럼 많은 표징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표징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닦아올 당신의 죽음 앞에 사람들이 행할 행동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시기 중간 지점에 와 있습니다. 이번 주 전례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허물어질 성전을 통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계명은 예수님 시대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지만 물질, 자신들의 욕망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그 것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파스카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는 우리들의 여정도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눈을 그분께로 향하도록 하는 한 주간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