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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전례말씀 묵상
( 2019년 베틀레헴 예수님 탄생 성당, 예수님 탄생 동굴)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제1독서 이사야서 9,1-6
제2독서 티토 2,11-14
복음 루카 2,1-14
7번째 성탄을 이 곳 예루살렘에서 보낸다.
2014년도 성탄과 2020년 성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큰 빛’을 알아보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큰 빛을 통해 나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인식하는 눈과 귀와 마음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인다.
오늘 밤 미사 전례 말씀에서는 빛, 큰빛, 참빛을 강조한다.
본기도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참된 빛이라고 말한다.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은 밤을 거룩한 밤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 거룩한 그 밤을 밝혀준다. 그 빛으로 세상 사람들은 빛의 신비를 깨닫는다. 이제 사람들이 지녔던 소망이 참 소망이 된다. 또한 그 소망은 더욱 간절해 진다. 오늘 이 세상에서 보았던 그 빛의 기쁨을 천국에서도 계속 누리게 해 달라는 것이다.
제 1독서에서는 큰 빛에 대해 언급한다.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리며 어둠의 긴 터널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과 암흙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친다. 이 빛은 기다리던 이들에게만 비추어짐을 알게 한다. 그래서 기쁨이 된다. 즐거움이 된다. 많은 이들이 즐거워하게 된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기쁨을 농작물의 수확과 전리품에 비교한다. 농작물의 수확과 전리품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표시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도와 주셨다는 표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 한 없이 떠돌았다. 긴 세월 후에 드디어 약속의 땅에 도착한다. 떠돌이 백성이 땅을 차지하고 농경을 시작한다. ‘조상 대대로 가축을 쳐 온 사람들이’(창세46,34참조) 정착하여 첫 수확을 하였을 때의 기쁨은 그들만이 알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알았기에 오늘의 기쁨을 아기 탄생에 비유한다.
약속에 땅을 차지하기 위해선 본토인들과 전쟁을 겨루어야만 했다. 남의 땅을 빼앗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했고 하느님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 믿음이 필요했다. 땅을 차지한 후의 기쁨! 떠돌이들이 느꼈던 기쁨! 정착할 수 있다는 확신과 거주지에 대한 안전함과 안정감은 내면 깊이 자리잡는 평화와 같았을 것이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내면의 평화일 것이다.
탄생한 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안에 들어온다. 아기 예수는 늘 헤매며 찾던 그들의 주거지가 되어 줄 뿐만 아니라 그 주거지를 지켜주는 군왕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평화는 끝이 없으리다.
1독서에서 언급된 빛, 참빛, 큰빛이 복음에서는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는 빛”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빛이 보통 빛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이라는 것이다. 태어날 아기의 이름은 예수인데 이 예수가 이제 ‘주님’이 된다. 그리고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는 빛은 주님의 영광이 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주님이 되고, 주님이라는 명칭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인간과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그분의 권능이 된다.( 1코린 8,6 ; 로마 14,9 참조) 이 모든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천사가 발현한다. 천사는 목동들에게 사건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목동들에게 이 놀라운 사건을 믿게 할 표징까지 말해준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빛은 이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 현실적인 것이 된다. 목동들이, 인간들이 한 표징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생명의 탄생으로 실현된다. 하늘의 뜻이 땅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은 역사적인 한 사건을 언급한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사람들은 로마 황제의 칙령으로 호적 등록을 해야만 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조상들의 땅인 베틀래헴으로 호적등록을 하러 간다. 마리아는 구약에서 예언된 것처럼, 예언자들이 말한 것처럼 베틀래헴 고을에서 아기를 출산한다. 이 출산은 하늘을 통해, 천사를 통해 목동들에게 전해지고 목동들은 표징을 통해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를 알아본다.
하늘의 뜻이 빛으로 표현되었고 인간들은, 사람들은 그 빛을 보았다. 그 빛은 표징을 통해 영광의 빛이 되고, 주님이 된다. 영원히 다스릴 주권자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는 천사와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하느님을 찬미한다.(루카 2,13-14 참조)
땅에는 온 백성들이 큰 기쁨을 누린다.(루카 2,10 참조)
2독서에서는 빛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표현된다. 그렇다. 은총이다. 인간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천사들을 통해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 천사들의 신부름에 마리아가 응답을 했고, 목동들이 응답을 했다. 올해 복음 ‘나해’에서는 봉독되지 않지만 요셉이 응답을 했다.
이 은총은 우리를 교육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후에는 이방인의 신을 믿었던 행위에서 ‘참신’ 인 구원자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이제는 헛된 욕망이 사라질 것이다. 모든것이 바뀐다. 삶이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간들의 희망이 확실해 졌다. 이 희망이란 그리스도의 영광이 삶에 직접 투입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목동들을 비추듯이 (루카 2,9 참조) 지금 이 시대의 어려움에도, 사람들의 희망에도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티토 2,14)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그분의 영광을 본 우리가 (영성체송 요한 1,14 참조) 마음의 눈이 새롭게 밝혀 져서 목동들처럼 하느님을 눈으로 알아 뵙길 희망하자. (주님 성탄 감사송 참조) 그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 어려움 중에 있는 이웃들, 도움을 기다리는 이웃들을 도와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자.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매일의 삶에서 희망을 잃던 이들이 빛을 보았다.(1독서 이사야 9,1 참조) 아기가 주는 새 생명은 미래를 만들어 준다. 아기가 주는 웃움은 기쁨을 넘치게 한다. 아기가 주는 눈빛은 희망의 빛을 얻게 한다. 한 아기의 생명으로 미래가 생겼다. 한 아기의 존재로 웃움이 넘친다.
한 생명에게서 새로운 빛을 보았다. 희망을 보았다. 이 생명의 빛은 그 빛을 본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그 힘을 받은 사람들은 일상을 일구어 나간다. 빛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마리아 콘체띠나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