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제자수녀의 창작 콘텐츠로 도와드립니다!
전례자료실
파스카 성야 전례 말씀 묵상
파스카 성야
1독서 창세기 1,1-2,2
2독서 창세기 22,1-18
3독서 탈출기 14,15-15,1ㄱ
4독서 이사야 54,5-14
5독서 이사야 55,1-11
6독서 바룩서 3,9-15.32-4,4
7독서 에제키엘서 36,16-17ㄱ. 18-28
8독서 로마서 6,3-11
복음 마태오 28,1-10
오늘 밤 미사는 교회 전례에서 가장 성대하게 거행됩니다. 성야의 장엄한 시작, 부활초 점화로 시작하여 빛의 예식 때 부르는 파스카 찬송과 8개의 독서와 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 시키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을 기념합니다.
예식은 1부 빛의 예식 2부 말씀의 전례 3부 세례 전례 4부 성찬 전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독서 창세기 1,1-2,2
오늘 전례 말씀은 천지 창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 하느님의 말씀의 맨 첫 페이지, 첫 줄 부터 봉독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한 처음, 이 세상의 시작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그분이 맨 처음 하신 일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첫 째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습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첫 날부터 하느님께서 하시는 창조 사업은 한계성이 있는 우리 인간들의 이성으로서는 전부 받아들 일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느님께서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침묵으로 계시지 않고 보이지 형체를 통해 인류에게 접근해 오고 계십니다. 이제 그분이 창조하신 빛을 통해 인간은 빛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면, 어두움을 알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날입니다. 물과 물 사이를 갈러 궁창을 만들어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셋째 날은 하늘 아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뭍을 땅이라 하고, 물이 모인 곳은 바다라 하였습니다.
넷째 날은 낮과 밤, 표징과 절기, 해와 달, 그리고 별을 만드셨습니다.
다섯째 날은 번식하고 번성하여라. 제 종류대로 창조하십니다: 집짐승, 들짐승, 기어 다니는 것, 등
여섯 째 날은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집짐승, 들짐승,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복을 내리셨습니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라.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고 다스리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은 신비입니다. 우리는 그 신비의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더라’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상호 보완하여 생명을 존속시키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인간들에게 온갖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하셨지만 다스리는 권한을 인간들에게 주셨습니다.
일곱 째 날 복을 내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을 본 받아 거룩함을 내 안에 늘 보존하는 생명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2독서 창세기 22,1-18
아브라함은 백살이 되어 아들 이사악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복을 내려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창세 17,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사라의 나이는 아흔 살(창세 17,17)이었습니다. 이렇게 불가능 속에서 낳은 아들인데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얻고 길을 떠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잠도 못 잤을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3일 동안 걸으며 그의 고통과 번민, 아픔은 상당히 컷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에게 지우고 본인은 그 아들을 죽일 불과 칼을 들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미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들의 질문에 번제물을 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라고 얘기합니다. 둘이 함께 계속 걸어갑니다. 발이 철근을 매어 놓은 것처럼 무거웠을 것입니다. 어린 아들보다 더 천천히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의 죽음을 연장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들을 묶어 재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 합니다. “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하느님을 따른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은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주님의 천사가 말합니다. “너의 외아들까지 …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려고 그의 외아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에 대한 복은 컸습니다: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을 보고 축복합니다. 그 축복은 믿음을 통해 오늘 나에게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3독서 탈출기 14,15-15,1ㄱ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죽게 되었습니다.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 놓여 있고 뒤에는 이집트 병사들이 잡으로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나는 이집트 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하기 위해 5번의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 천사의 자리바꿈 : 이스라엘 군대 앞에 가던 천사가 자리를 옮겨 그들 위로 가 있습니다. 그러자 구름이 한 쪽은 어둡게 하고 다른 쪽은 밤을 밝게 하여 밤새 아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가 갈 수 없었습니다.
- 거센 바람 : 주님의 모세의 손을 통해서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걸어갔습니다.
- 이집트 군사들 : 주님께서 이집트 군사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병거 바퀴가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물이 되돌아오도록 명령하고 이집트 군대 병거와 기병이 바다 속에 빠지게 됩니다.
-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군사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행사하신 큰 권능을 보고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습니다.
4독서 이사야 54,5-14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먼저 당시 강대국으로 떠오르던 아시리아에게 BC 721년백경 침략당해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의지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부르짖었지만, 그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남 유다도 하느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기 보다는 이집트와 동맹을 맺으며, 결국 바빌론의 세력에 침략당하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에서 지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2이사야서를 통해 다시 말씀합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 하느님께서 새롭게 그들을 불러드릴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우리를 위해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속죄 제물로 내 놓으신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고 54장은 53장에서 언급한 그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 지체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우리에겐 누가 있습니까? 만군의 주님, 구원자, 온 땅의 하느님께서 크나큰 자비로 우리를 다시 거두어 들이십니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는 영원한 자애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십니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그분의 자애는 밀려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의로움으로 굳건히 세워지고 압박에서 풀려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며 “의로움으로 굳건히 세워질 것”입니다.
5독서 이사야 55,1-11
이사야 55장 말씀에서는 구원의 약속을 확증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언약입니다.
앞서 제 4 독서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제 55장은 그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구성원들을 향한 하느님의 언약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돈 없는 자들도 오너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니 이는 다윗에게 베푼 나의 변치 않는 자애이다.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6독서 바룩서 3,9-15.32-4,4
바룩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간 백성들에게 경고하며 묻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원수들의 땅에서 살며 남의 나라에서 늙어가느냐?
네가 어찌하여 죽은 자들과 함께 더럽혀지고 저승으로 가는 자들과 함께 헤아려지게 되었느냐?
이 모든 원인은 지혜를 버리고 하느님의 길을 걷지 않은 탓이라고 합니다.
유배된 자들을 구원할 이는 재난을 내리신 하느님뿐이시기에 그분 앞에서 참회하면서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면 하느님께서는 자비와 정의로 이스라엘을 기꺼이 인도해 주신다는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그분 만이 슬기를 아시고 당신의 지식으로 그것을 찾아내십니다.
이 세상이 영원하도록 마련하신 그분께서 그곳을 네발 가진 짐승들로 채우셨습니다.
그분께서 빛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의 명령과 길이 남을 율법을 기록한 슬기의 길을 모두 찾아내시어 당신 종 야곱과 당신께 사랑 받는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땅 위에 슬기가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7독서 에제키엘서 36,16-17ㄱ. 18-28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끌어 내실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계약에는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약 조건은 조상 대대로 지켜 나아가야 되는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걸어온 길과 행실로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땅에 쏟은 피 때문에, 그들이 그 땅을 더럽히며 섬긴 우상들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화를 퍼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민족들 사이로 쫓아 버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길과 행실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주님의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낸다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8독서 로마서 6,3-11
오늘 독서는 세례가 무엇인지 재인식시켜 줍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오늘 독서에서 세례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 일까요?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주님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로써 그분과 함께 묻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처럼 죽어서 주님과 함께 결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특권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그 분과 함께 죽은 사람의 죄는 소멸됩니다.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는 우리의 옛 인간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이렇게 죽을 때에,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28,1-10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오후 시간은 해가 빨리 떨어집니다. 해가 지면 유다인들에게는 안식일이 다가옵니다. 금요일 해가 지는 시간부터 다음 날, 토요일 해가 지는 시간까지는 안식일입니다. 이 안식일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난, 주간 첫날에 예수님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에 찾아 갔을 때 표징들이 나타납니다 :
-
큰 지진이 일어나고
-
천사의 모습과 행위가 표현됩니다:
-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 천사가 말한다 :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라.
- 옷은 눈처럼 희었다.
-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으로 다가가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한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되살아나셨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와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라고 초대하십니다. 마리아와 여인들을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소식을 전하러 달려갑니다. 다시 한번 여인들의 모습을 봅시다.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크게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달려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난 우리들이 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어려움과 두려움을 만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커다란 내적 기쁨으로 가득 차고, 그 기쁨은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달려갑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각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듯이 우리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갑시다! 일상을 떠나 새로운 살과 영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예수님께로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