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제자수녀의 창작 콘텐츠로 도와드립니다!
전례자료실
2019년 10월 20일 LD와 성체조배 전교주일 (마태 28, 16-20)
2019년 10월 20일 LD와 성체조배
전교주일 (마태 28, 16-20)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열한 제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고, 40일을 함께 지냈다. 그러나 여전히 죄와 배반과 의심을 버리지 못한 상처 입은 공동체다. 그들은 예수님 부활의 목격증인이지만 아직 확신이 없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그들이 받은 내적 충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관과 메시아상과 하느님상이 완전히 전복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영적으로 위기를 맞은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보낸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죽음과 부활의 사건으로 다시 되돌아 보게 하기 위해서다.
갈릴래아로 떠나: 갈랠래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돌아 보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은 언제나 앞서 가신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하느님을 감지할 수 없지만, 잠시 멈춰 서서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보면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 인생에 개입하셨고, 이끌어 오셨는지 볼 수 있다.
- 예수님이 복음선포를 시작하신 곳이다.(마태4, 15-17)
-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이고 제자들과 함께 지낸 장소다.
- 예수님이 성부로부터 파견 받아 당신의 사명을 시작한 장소다.
이곳으로 제자들을 보낸 것은 이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명을 계속하도록 파견하기 위해서다.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다.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다시 산에 오르도록 제자들을 초대하셨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명시된 어떤 산에 간 것이 아니라 산으로 갔다. 마태오 복음에서 산은 하느님의 계시가 내리는 곳, 하느님의 특별한 현현의 장소다. 산 꼭대기는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 하느님의 가르침이 있는 곳을 상징한다. 하느님과 깊은 혼인적 관계를 맺는 참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평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산으로 올라 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내면화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산: 행복선언이 베풀어진 장소(마태 5,1)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평지에 머물면서 세상의 사고방식에 젖어 들다 보면 마음이 무겁고, 지치고, 이 세상의 현실에만 빠져들어 물신(物神)을 숭배하기가 쉽다. 평지에서만 살면 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가 없다. 우리가 산으로 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과 함께 그분께서 제시하신 행복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산에서 참 인간이 되는 길, 참 행복의 길, 우리의 삶이 주님의 삶과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두 번째 산: 변모의 산(마태 17,1)
하느님의 가르침, 하느님의 직관으로 진실을 볼 수 있는 산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변모 사건을 통해 눈에 보이는 당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을 통해 당신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종처럼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죄인처럼 짓밟히셨지만, 이 산에서 참 하느님이시며, 진정한 왕이신 당신의 참 모습을 보여 주셨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참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이 산에 올라가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행복의 길, 사랑의 계명을 살기 위해서는 사람 안에 숨겨진 참 모습을 보고, 믿어야 한다.
세 번째 산: 사천 명을 먹이신 산(마태 15,32-39)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 세상의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보여주신 산이다. 우리가 이 산에 오르지 못하고 평야에만 머물러 있다면 세상의 재물을 긁어 모우고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을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잠시의 관리인일 뿐이다.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야 한다. 이 재물을 주신 목적은 형제들과 함께 나누면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주신 것이다. 재물을 모으고, 자기 방식으로 관리하다보면,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비움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17절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경배하다”: 경배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인정한다는 자세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얼굴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드러난 하느님은 오직 사랑이신 하느님이며, 당신 자신 전부를 내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의심하다”: 그러나 몇 명은 아직도 굳건한 믿음이 없다. 의심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굳건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믿음은 절대적으로 증명하고 확인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은 개념화하여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항상 의심과 두려움이 함께 공존한다.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피해갈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18절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늘과 땅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배하시는 권력자가 아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고, 생명을 살리는 분이시다. 불완전한 인간의 차원에서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인간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권한, 거룩한 인간이 되게 할 수 있는 권한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받은 이 권한을 제자들에게 건네시면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도록 파견하신다.
19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이 구절에는 네 개의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는 제자들이 수행해야 할 네 가지 직무이기도 하다.
① “가거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밖으로 나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역사와 문화 안으로 들어오셨고,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 주셨다.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은 예수님께서 얻어 주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먼저 찾아가서 알리라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다.
② “제자로 삼아라”: 제자는 스승과 함께 머무는 사람이다. 스승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생각과 판단과 삶의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제자다. 예수님께서는 이론적인 교리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인식하고, 경청하고, 말하고, 사랑하는 법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삶으로 모범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③ “세례를 주라”: 세례예식을 의례적으로 베풀라는 말이 아니다. 세례를 준다는 것은 물 속에 잠긴다는 뜻이다. 모든 백성들을 하느님의 생명, 하느님의 사랑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삶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인 복음의 정신에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지니게 하라는 명령이다.
④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은 오직 하나 사랑의 계명이다.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인간과 하나가 되신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삶을 통해 새로운 길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20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마태 1,23) 하느님이심을 말한다. 마태오는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주님의 위대한 약속으로 복음을 끝맺는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새 백성인 교회와 늘 함께 계시면서 교회를 돌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 하신 말씀은 성경 안에서 수 없이 반복된다. 모세, 여호수아, 예레미야 예언자에게도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므로 그들 곁을 떠나지 못하신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성체성사로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동반해 주신다.
성찰과 결심: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를 가르치신다. 그러나 주님의 산에 올라 그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나에게서 멀리 계시는 분이다. 오늘날 주님께서 머무시는 산은 눈에 보이는 성전과 말씀과 성체성사다. 얼마나 자주 산을 찾는지 삶을 되돌아 보자. 늘 평지에 머물면서 세속적인 정신에 빠져 있다면 하느님과 깊은 내적 일치를 이룰 수 없다.
* 로그인을 하시면, 아래 파일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