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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사순 제2주일 전례 말씀 묵상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기념 성당(타보르 산)
사순 제 2주일 다해
제1독서 창세기 15,5-12.17-18
제2독서 필리피 3,17-4,1
복음 루카 9,28ㄴ-3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세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이스라엘 북쪽 갈릴래아 지방에는 헤르몬 산, 카르멜 산과 타보르 산이 있다. 이중 타보르 산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거룩한 변모의 산으로 불리며 많은 성지 순례자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이 산이 복음서(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에 나오는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타보르 산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나자렛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326년에 이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타보르 산 정상에 경당을 세웠다. 348년에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로는 타보르 산을 주님의 거룩한 변모의 산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년-403년)와 예로니모(Jerome 347년-419년)가 이를 확증하였다.
타보르 산에는 기원 후 4세기 이후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들었다. 6세기경 큰 성당이 세 개 세워졌으나, 페르시아군에 의해 614년에 파괴되었다. 그 후 십자군과 이슬람(회교도)이 서로 번갈아 차지하다가, 마침내 1631년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산 정상에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하였다. 현재 타보르 산 정상은 가톨릭 지역과 그리스 정교회 지역으로 나뉜다.
현재의 성당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1919년에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공하였다. 성당 정면 양쪽에는 두 개의 종탑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각각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안 정면에는 중앙 제대가 있고 복음서의 변모 이야기가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성모님께 봉헌된 제대, 오른쪽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중앙 제대 아래에도 아름답게 꾸며진 지하경당이 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복음은, 예수님이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 하신 다음에 나오는 사건이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라고 이르셨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많이 놀랐을 것이다. 또한 믿기도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로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엿새 뒤’라고 표현한다. 공간 복음에서 날짜 차이는 있지만 말씀하신 내용의 순서에는 변함이 없다. 그 순서를 보면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만을 대동하신 때가 있었다.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고 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요한 5,37 ; 루카 8,51) 회당장은 유대인이다. 회당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아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이는 영이 되돌아와서 즉시 일어났다. 이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신다.
또 다른 때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니에 가서 기도하실 때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에게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마르 14,33)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세 제자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기도하라”(마르 14,34)하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들만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고 한다. 제자들은 이 곳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듣는다.
얼마나 졸았을까?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세 분에게 드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 때 뿐 만이 아니라, 세월이 더 흘러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을 따라 갈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 하실 때에도 제자들은 슬픔에 잠기어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곁에 제자들의 현존을 원하신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이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사도 2,14-36)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얼마나, 어떻게 기도를 해야 모습이 변할까?
수도자들은 1년에 한 번 영신 수련을 한다. 수도회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6일 - 8일이다. 영신 수련은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뵙고 따르기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기간이다.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시듯 수도자들도 일상을 떠나 주님을 만나기 위한 ‘한적한 곳’으로 떠난다.
사순시기는 영신 수련처럼 일상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지는 않는다. 일상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기간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 시기에 맞는 말씀들을 통해 신자들을 초대한다. 사순 시기의 기도는 일상을 통해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 뿐만 아니라 다시 새 생명을 얻는 ‘부활’의 은총을 준다.
우리는 예수님의 변하신 모습을 보면서 성령을 통한 성부 아버지와의 만남을 상상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얼마 후에 예루살렘에 가셔서 죽음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이 아버지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준다. 제자들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려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신 것 처럼 우리에게도 믿음과 확신을 보여주시려고 한다.
예수님은 역사를 통해서 믿음과 확신을 주신다.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에 쌓여 나타난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구약의 율법가 그리고 대 예언자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입으로 증언하고 외쳤던 구원의 신비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구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두 사람 그리고 소리가 난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었다.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이 아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오늘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본 것과 들을 것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양성되어 간다. 예수님의 사명으로 가까이 접근해 간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선고하셨고, 제자들에게도 하느님이 선택한 아들이심을 직접 말씀하시지만 아직도 때가 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알릴 수 없었다. 아직도 예수님이 가시는 죽음의 길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고쳐 주시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 내신 후에도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험하게 이르곤 하셨다.(마르 3,12) 많은 군중이 따르고 그들을 모두 고쳐주면서도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마태 12,16) 회당장의 딸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마르 5,43)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에야 제자들에게 새 사명을 주신다. 더 이상 침묵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사순시기에는 예수님의 두 면을 보게 된다. 우리 인간들처럼 한 없이 나약하신 모습이다. 사순 제 1주일에 유혹당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이 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다른 한 면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인간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보게 된다. 그분의 모습이 변한다. 나약한 인간이 ‘빛’ 나는 모습으로 변한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 뿐이다. 성부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신뢰와 기도가 필요하다. 사순시기는 이러한 신뢰를 키워가는 시기이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 가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