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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대림 제2주일 다해 전례 말씀 묵상
대림 제2주일 다해
제1 독서 바룩 5,1-9
제2독서 필리 1,4-6. 8-11
복음 루카 3,1-6
오늘 루카 복음에서는 오실 아기 예수님을 준비하던 한 인물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면서 그가 외치던 메시지도 공개 된다. 예수님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구원자 그분은 꼭 오실 것이고, 세례자 요한이 그 길을 준비한다. 루카 복음은 복음 독자들인 그리스계 이방인 신자들을 위해 세례자 요한의 출현을 언급하며 그 시대 정치계와 종교계를 통해 소개한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 제국 통치하에 있었다.
티베리우스 로마 황제’(Tiberius, BC 14~AD 37)는 AD 14년에 탁월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자 원숙한 56세 나이의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2대 황제로 오르게 되었다.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4년을 더 살다가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가 예언하였고 온 천지가 주목하고 기다렸던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실 때 바로 그 땅을 다스리던 황제였다. 그리고 그분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에도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황제였다.
로마 제국의 통치아래 빌라도는 기원후 26년부터 36년까지 좁은 의미의 유다를 다스린 “총독”이다.
헤로데 (안티파스)는(9,7-9; 13,31-32; 23,7-12 참조) 기원전 4년부터 기원후 39년까지 갈릴래아와 페래아를 다스린다. 이 헤로데를 그의 아버지 대(大) 헤로데 임금과(1,5) 구분하기 위하여, 그리스 말로 본디 한 지방의 1/4을 다스리는 통치자라는 뜻의 테트라르케스, 우리말로 “영주”라고 부른다(9,7; 사도 13,1).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인 필리포스는 기원전 4년에서 기원후 34년까지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의 여러 지역을 다스린다.
대사제는 한 명이다. 대사제 카야파는 기원후 18년에서 36년까지 대사제로 봉직한다. 전직 대사제인 그의 장인 한나스는(요한 18,13) 기원후 15년에 퇴위하였으면서도 계속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현직 대사제와 함께 언급된다(요한 18,13-24; 사도 4,6 참조).
하느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내렸다. 요한의 외침은 본인 스스로의 외침이 아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요한의 외침은 이사야 예언자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말한다.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세례'(바티조, βαπτίζω)는 '물 속에 잠기다'는 의미로서 일종의 침례 예식을 뜻한다(마태 3,6 참조). 그런데 이 세례는 그리스도교에서 새롭게 창출해 낸 의식이라기 보다 이미 유대인들에 의해 개종자들을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정착(定着)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세례'는 유대인들에 의해 전통적, 의식적으로 내려왔던 그 세례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즉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의 고백에 관한 기본 원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사도 바오로가 나중에 로마 6,4에서 설명한 바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 (μετάνοια)를 중심으로 하여 베풀어지는 세례를 뜻하는 것으로, 여기서 '회개'(메타노이아)란 어원적으로 마음의 변화를 나타낸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로 사용되어 생각과 의지와 인격의 변화, 곧 전인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 진실한 회개에 대한 하느님의 직접적인 응답은 죄사함이다. 따라서 이 하느님의 죄사함에 대한 예비적 단계로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이다.
루카 복음의 메시지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준다. 이사야 예언자의 책에 기록된 데로 세례자 요한의 말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다.
루카 복음은 그리스계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이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40장 인용을 5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까지 인용한다. 반면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40장 3절 만을 이용한다.
루카 복음에는 예수님과 그의 선교 운동이 로마법에 위배되는 운동이 아니고, 로마의 질서에 위협을 가져다주는 그런 운동이 아니라는 정치적 변증의 의도가 강하다. 예를 들어 예수의 재판과 수난사에서 빌라도는 자꾸 예수를 내 줄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자꾸 예수와 예수의 무리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예수의 재판과 수난의 책임을 로마인들에 대해서는 면제하고 유대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이방인들에 대해 열려진 태도를 갖는다. 예수님의 탄생을 (1,5, 2,1, 3,1-2) 로마 역사와 연관시켜서 서술한다. 예수님이 이방인들에 대한 빛이다(2,32)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열려진 태도와 사마리아인들에게 온유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렙타(시돈 지방) 과부의 도움을 받는다(4,26). 엘리사도 이스라엘인을 돕지 않고 시리아 장군 나아만을 치료(4,25-27)하면서 이방인들을 돕는 것을 정당화하고 유대인들이 믿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병 고친 열명의 나병 환자 중에서도 예수께 돌아와 감사할 줄 아는 진정한 신앙 있는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다(17,11-19) 또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에서 심판의 불을 내려서 다 싹쓸이 해버리라고 할 때에도 예수께서 호되게 꾸짖는 것을 볼 수 있다.(9,51-56)
두 번 째 대림초가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1 코린 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