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윤수진 M.수산나 수녀
“HODIE MIHI, CRAS TIBI.” 대구 대교구 성직자 묘지에 들어가는 문 양쪽 기둥에 적혀 있는 라틴어 문구입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리 중 하나가 ‘시간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불가항력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교회는 11월을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 성월로 지내면서 이러한 죽음에 대해 묵상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사실 현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은 두려움과 슬픔으로 다가오기 쉽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아직 직접 체험하지 못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더는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은 우리 마음속에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부활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과 상실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새로운 시작이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이들과의 영적 유대를 맺게 되는 관계의 심화입니다.
위령 미사 때에 봉헌하는 감사송에서 주례 사제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합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 감사송 1)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기쁨과 희망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박해를 받던 초대 교회에서는 순교자들의 죽음을 천상 탄일, 즉 하늘나라에서의 탄생일이라 부르며 신자들이 죽은 후 그 영혼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부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죽음은 두려움과 슬픔을 일으키는 기피 대상이 아니라 주님의 품 안에 안길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의 문이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 여러 성인, 성녀들이 이러한 신앙을 고백하였고, 한국 교회의 수많은 순교자 또한 같은 고백을 하면서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위령 성월을 맞으며 우리보다 앞서 신앙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원한 안식에 대한 믿음 안에서 우리 각자 안의 부활 신앙이 더 견고하게 다져질 수 있는 은총의 시기를 보내도록 초대를 받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 날인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11월 1일, 위령 성월의 첫날에 하늘나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성인 성녀들과 함께 기쁨 가득한 축제의 시간을 보낸 후, 위령의 날에 죽은 모든 이들, 특별히 연옥 영혼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 모든 성인, 성녀들과 함께 천국의 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이날 교회는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위하여 미사와 성무일도, 기도를 바치고 선행에 힘쓰도록 권고를 합니다. 모든 사제는 이날 하루 동안 3대의 위령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데, 이는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된 전통이었습니다. 그 후 18세기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유럽과 남미 교회 안에서 이 특전을 허락하였고, 1915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당시 제1차 세계 대전 중 희생된 수많은 전사자를 기억하고,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더 많은 기도가 바쳐질 수 있도록 전 세계의 모든 사제에게 이 특전을 내렸습니다. 오늘날 사제는 이날 바치는 세 대의 미사 중에 둘째 미사는 모든 연령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을 합니다. 우리에게 가깝고 소중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연옥에서 고통을 받는 모든 연령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우리 또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와 코로나19로 인하여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은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기억하며 교회 안에서 한마음으로 기도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11월, 위령 성월을 시작하며 벗님들의 마음속에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과 평화가 가득 넘치길 기도합니다. 아울러 모든 연령을 위한 기도 안에서 각자가 그동안 살아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그 안에서 좋으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사랑과 섭리에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삶의 여정 또한 주님 손 안에 맡겨드릴 수 있는 벗님들이 되시도록 성체 대전에서 우리의 영원한 천상 스승 예수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연령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아있는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믿음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