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서 용서로 건너가는 파스카
배선영 M.베르타 수녀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죄를 짓지 않는 것과 용서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말에 수긍을 하면서 용서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나의 체험을 나누고자 한다. 용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 용서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용서의 왕으로 당신을 제시하셨다. 우선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받은 상처로 인한 화나 적개심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상처에 지배되어 살게 하며 주변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피곤한 존재가 되게 한다. 사람들은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며 하느님의 사랑 체험만이 용서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상처와 용서 사이의 여정에 머물고자 한다. 사람들은 용서에 대해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용서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묵과적-보통 주변 압박 때문에),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게 하기’(수동적), ‘결정하기’(결심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것), ‘빠른 해결책’이다.(시간이 걸리는 노력이 될 수 있다.)등 조금은 피상적으로 이해한다. 심리학에서는 용서를 개방단계-결정단계-작업단계-심화단계로 설명한다. 물론 사람마다 상처의 수위와 수용의 차이가 있기에 이 단계를 꼭 다 거쳐야 한다거나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를 보고, 용서하기로 결정하고, 상처를 준 이를 가해자에서 나 같은 나약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미를 찾고 나를 찾아 새로운 목표를 향하게 하는 것이며 이 모든 여정이 나와 함께 하시며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상처는 친밀함을 먹고 산다.’ 상처는 타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서먹함이나 불편함이 단순히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 탓으로 여기며 살아왔는데, 내 안에 깜짝 놀랄 차가운 분노가 있음을 보았다. 수도자이면서도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함께 묻어 두었던 상처를 직면하면서 겪게 될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이것이 의무로서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총이라는 확신에 용기를 내었다. 나에게는 상처를 개방하는 단계보다 두 번째 단계인 ‘용서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차라리 쉬웠다. 다만 용서를 결정했음에도 내 안에 분노와 불편함이 계속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이때 나는 용서는 결심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성체 대전에서 기도하며 예수님과 나 사이에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 입장에 서서 이해해보려 노력하였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느낌과 감정들에 솔직하려 했고, 메모도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그대로 주님께 봉헌하였다. 이것이 작업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4남 1녀 중 장남이신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기대 속에서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언제나 집안의 큰 어른이었으며 보호자로 사셨다. 그렇기에 누구 밑에서 지내는 법을 배우신 적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나약한 한 인간으로 다가왔고 왜 아버지가 자신을 선택하셨는지 이해가 되며 연민이 생겼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용서의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인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서는 정의와 도덕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차가운 내 분노의 원인은 배신감이고 그 근원은 아버지를 향한 내 사랑이 거부당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이것은 정의와 도덕성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다. 세월에서 배우는 것 중 하나는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했던 많은 실수와 후회, 어리석음. 나는 지금도 나약함에 걸려 넘어지며 타인의 용서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가? 상처와 분노에 함몰된 나는 자신을 교만한 피해자로 만들었다. 이 모순과 오류를 깨닫는 순간 “아버지 죄송해요”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고 갑자기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으며 내 안에 묶여 있는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심화 단계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연대감을 느끼며 감소 된 부정적 영향을 경험하는 동시에 삶의 목적을 새롭게 하고 죽음의 상처에서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파스카의 여정이다. 이렇게 부활 체험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에게 다시 힘겨운 일이나 상처받을 일이 찾아왔을 때 기뻐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라 고통에서 배운 의미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사랑할 힘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