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온유조 곽순자 엘리사벳
세월은 흘러갑니다. 어느 시인이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던 생각이 납니다. 아름다웠던 은총의 기억들은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지난 10월 수녀원 성지순례는 제게 너무도 아름다운 은총의 기억으로 제 마음의 창고에서 자주자주 꺼내 보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가을비가 잔잔히 내리던 10월의 어느 날, 우리는 죽산 순교성지를 순례했었지요. 언제나처럼 성지를 향해 가는 차 안에서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기도로써 마음을 준비하고 그곳에 묻힌 순교자들의 삶을 전해 들으며 성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성지에 도착하니 탁 트인 온통 초록 물결!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사가~ 곧바로 성전에서 미사참례를 하고 또 옵션으로 성지 신부님의 아름다운 트럼펫 연주도 감상하며 아름다운 선율에 선뜻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오빠~~를 부르며 환호했었지요. 그리고 식사 후 잔잔한 빗속에서 각양각색의 우산을 쓰고 벗님들과 함께 드리는 묵주기도의 행렬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우리는 몹시 기뻤노라. 우리는 몹시 기뻤노라.주님의 백성들이 저기 올라가도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러”(시 122 참조)라는 시편의 기도가 절로 떠올랐습니다.성모님께서도 기꺼이 우리의 행렬에 함께 하시며 기도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다음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차례였는데 다리가 불편한 저로서는 조금 무리인 것 같고 자신이 없어서 순교자 성역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저도 자식이 있지만 내 자식이 너무 힘에 겹게 무언가를 하는 건 마음이 아프니까요. 하느님께서도 제 사정을 잘 아시니 제가 그렇게 무리해서 그 길을 걷는 것은 원하지 않으실 거라는 제 나름의 해석을 해가면서요... 덕분에 그곳에 계신 순교자들과 오붓한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묘역 하나하나를 참배하면서 묘역 위에 가만히 손을 얹고 당신들께서 목숨까지 바쳐서 주님을 사랑했던 그 견고한 믿음을, 그리고 저의 습관화된 악습을 고칠 수 있게 전구 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다가온 생각 하나, 저에게 순교의 기회가 온다면? 글쎄요...삼십육계? 이런 저를 그래도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새삼 커다란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겸손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순교성지를 떠나며 저도 베드로 사도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계신데 저희가 주님을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요한 7, 68 참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나의 예수님!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