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현양 축일을 보내며
부산분원 성바오로조 유유순 요셉피나
지난 토요일 십자가 현양 축일 미사를 드리고 가슴이 먹먹해져 성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시어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요한복음 말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말문이 막혀 어떠한 말도 드릴 수 없었고, 오직 하나 ‘감사’만을 되 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해 어느 날처럼 말이지요.
꼭 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제 신장을 공여하고 남편은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만성신부전을 앓던 남편에게 내려진 ‘곧 투석하게 되리라’는 진단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남편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대신 아파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때부터 저는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부부를 예정된 곳으로 인도하시려고 우리 곁에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부부의 인생 틈바구니에 들어오셔서 날마다 우리와 새로운 이야기로 친교를 쌓아 가신다는 것을. 그런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용기가 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저의 소망을 들어주셨습니다. 신장이식센터에서 실시한 조직검사와 교차반응 검사 등 모든 검사에서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남남이지만 혈육과 같다는 적합 결과라 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아, 하느님께서는 나의 작은 탄식조차도 이처럼 귀하게 여기시는구나!’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아픔에 우리보다 더 아파하시고 남편을 살리실 길을 미리 마련해 주신 하느님 앞에 앉던 그날, 저 는 오래도록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그 말만 되 뇌이고 왔습니다. 그렇게 수술은 시작되었고 시간은 오로지 하느님께 맡겨졌습니다. 긴 밤과 같은 어둠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그 고요 속에 함께 해 주시며 먼동을 보게 해 주셨고, 저와 남편의 몸에 생명의 빛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신 하느님께서 또다시 저희 부부를 만들어 주셨고 저희는 그 생명의 빛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 25주년에 주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이제 금빛 여름날은 가고 가을은 수많은 꿈들을 모아 새로운 꽃들을 피우겠지요. 수녀님들은 기도로 수놓아진 눈부시게 흰 여름옷을 넣어두시고 푸르게 빛나는 가을 옷을 꺼내 입으시고 가을 기도를 드리시겠지요. 스승예수의 벗 회원으로 살아감이 참 행복합니다.
십자가 현양 축일 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처럼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는 기도를 내어놓는 수녀님들과 벗님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눈부신 길 위에 저 또한 함께 서 있음에 감사드리며, 누군가의 평범하고도 빛나는 일상을 위해 빛으로 녹아내릴 수 있도록 성실히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