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다.””
김임자 마리아 엘레나 수녀
7월의 무더위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계절입니다. 하나니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가 불가마 속에서 드린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다니 3, 66-67)를 나의 기도로 바치면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총을 구하며,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들어가 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기억이다. 친구와 함께 놀고 있는데, 저녁이 가까워지자 친구가 집에 가야 한다고 하여 나도 친구의 집에 함께 갔다. 집에는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께서 누워 계셨고, 일을 다니시는 어머니와 학교에 간 언니, 오빠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는 쌀을 씻고 국을 끓이며 자연스럽게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척 바쁘게 움직이는 친구가 대단 해 보였다. 친구가 오늘 반찬으로 콩나물을 무친다고 해서, 도와주고 싶었다. 친구에게 방법을 배워 내 생애 처음으로 콩나물을 무쳐 보았다. 참 맛이 있었다. 내가 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집으로 뛰어가 엄마와 언니들에게 이 일을 신이 나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수녀원에 입회하여 사도직을 배우는데 모르는 것이 생겨 묻고 싶을 때면 묻기도 전에 수 녀님께서 먼저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 수녀님들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고 모두 대 단해 보였다. 그러나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수녀님의 말과 행동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아직 수녀님의 나이가 아니고 수녀님을 모르니, 그 나이가 되면 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사도직을 배웠다. 내가 수녀님과 함께 하는 일들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수녀님께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셨다. 이렇게 수녀님을 알아가면서 그분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제는 그 옛날 나를 가르쳐 주셨던 수녀님들의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수녀님의 말과 행동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뒷담화를 하기도 하였지만 답답한 마음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수녀님께서 말씀해 주신 어린 시절 이야기가 기억났다. 주님의 은총으로 이야기 속 수녀님의 내면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간접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수녀님의 어린 시절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랑이 없는 그때를 원망하며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이런 나의 나약함을 바라보게 되면서 아이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홀로 견디고 지금 내 앞에 계시는 수녀님의 존재가 너무나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마음의 문이 열리며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 18)라고 고백하 게 되었다. 그날 이후 받아들이기 힘든 수녀님의 말과 행동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면서 하느님의 마음과 눈으로 수녀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게 된다. “주님! 감당하기 힘들었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지금 내 앞에 계신 이 수녀님이 지금의 이 상황에 함몰되지 않고, 사람들의 판단과 시선을 넘어 주님 사랑의 눈길을 마주하여 이 순간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소서.” 이 세상에서도 서로 다른 상황과 환경에서 공부하는 1학년의 1등과 2학년의 꼴찌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과 환경에서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온 “살아 있는 하느님의 영광”(성 이레네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만든 기준으로 비교하고 판단하며 요구하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 모상에 따라 창조된 하느님의 자녀이며 성령의 궁전이고 그리스도의 정배입니다. 사랑하는 벗님들! 내가 원하지 않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쉽고 편하고 즐거운 것을 선택하기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합시다. 내 앞에 있는 이웃을 있는 그대로를 받 아들이고 존중하며 배려할 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주 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서로 하나 될 때 찰나의 순간에 서로의 마음으로 들어가 는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