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의 품을 떠나
청원자 안지민 도로테아 자매
세상에 깔끔하고 아름다운 이별이 있을까요? 가지 말라고 붙잡으시는 엄마를 뒤로하고 수녀원에 입회한 지 두 해가 되어갑니다. 청원자가 되어 청원 메달을 목에 걸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났던 집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수녀원에 입회하면서 지은 죄가 있어 차마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휴가 며칠 전부터 엄마가 뭘 좋아하실지 고민하다가 평소에 기쁘게 받으시던 케이크 몇 조각을 사 들고 갔습니다. 현관 키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우리 집이 아닌가 싶어 동 호수와 본당에서 붙여주신 ‘교우의 집’ 명패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엄마에게 미리 연락드렸지만,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으셨나 싶었는데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어요.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한동안 제 마음 구석진 곳에 엄마를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입회하고 이따금 연락이 닿았던 동생에게 엄마가 날마다 우신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면 신앙이 없는 엄마에게 제가 못 할 짓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수녀원에 입회한 순간부터 엄마를 성모님께 맡겨드리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1년 만에 엄마를 만났는데 데면데면했어요.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동생은 독립해서 주말에만 가끔 오고, 이런 사연으로 엄마랑 단둘이 있으니 정말 어색했어요. 간만에 쓰게 된 제 방에는 그사이 많은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는데 책상에 모셔놓은 십자고상은 그대로 모셔져 있어 기뻤습니다.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시고 침대에 누워 계시던 엄마가 식사 때가 되니 ‘짜장면 시켜 먹을까?’ 하시며 제 방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곧잘 시켜 먹던 동네 중국집들은 전부 이사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시킨 짜장면 세트 메뉴를 식탁에 두고 엄마와 마주 앉았습니다. 제가 엄마 눈치를 슬쩍 보면서 성호경을 그었더니, ‘수녀원에선 이런 거 못 먹지?’하고 물어보시는데, ‘제가 잘 지내나?’ 걱정은 되셨나 봅니다. 이 한마디에 긴장했던 제 마음은 금세 풀려 몽글몽글해졌어요. 식사를 좀 하시다가 제가 가져온 케이크를 꺼내시면서 하신 말씀도 놀라웠어요. ‘너 가고 나서 이런 거 처음 먹어본다.’ 그 말씀이 물꼬가 되어 저도 엄마가 잘 계셨는지 여쭤볼 용기가 났고, 그동안 ‘이런 거 잘 못 먹었던’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이 저의 차지가 되었답니다. 수녀원에서 생활하면서 문득 엄마가 떠오른 순간들이 있었는데, 엄마가 제게 하셨던 말씀들이 구구절절이 옳았다는 것을 느낀 때였습니다.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들풀처럼 자란 엄마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신기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귀찮다 싶을 정도로 엄마가 저를 붙잡고 가르치셨던 생활 습관들을 수녀원 규칙을 배우면서 다시 듣게 되니 ‘엄마 말이 다 맞는 말이었구나’ 하고 뒤늦은 후회도 하곤 했습니다. ‘성모님!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받아야 했던 사랑의 빈자리를 성모님께서 채워 주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아는 엄마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돌보심 없이 가능했던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가족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모두를 위해 기도하라고 저를 이 제자 수녀의 길로 초대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도 성모님께 엄마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도록 신앙의 은총을 전구 해 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더불어 하느님을 모르고 사는 가련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 기도가 하느님께 가 닿아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살 수 있기를…. 세상의 외로운 영혼들이 성모님에게서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받고 기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