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속에 나타난 하느님 얼굴
박성미 M. 루시 수녀
내 방 책상 위에는 만딜리온 예수님이 그려진 작은 이콘이 하나 놓여 있다. 이 이콘은 13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이콘 사도직을 하는 마리아 파치스 수녀님이 방한하셨을 때 처음으로 그린 예수님 얼굴이다. ‘손으로 그리지 않은’ 또는 ‘천위의 주님 이콘’이라 불리는 만딜리온은 그리스도의 얼굴만 묘사하고 몸은 그리지 않는다. 이 이콘에 대한 유래는 에우세비오 교회사 1권 13장에 나온다. 오늘날 시리아와 터키 국경 근처에 도시국가 에데싸의 군주 아브가르가 질병으로 인해 거의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시종을 시켜 겸손히 편지를 보내어 자신의 질병을 낫게 해주십사 청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보내 질병도 치유하고 그와 그의 친척들도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당신의 얼굴을 한 조각의 아마포에 찍어 보내셨다고 한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얼굴을 사람의 손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찍어 주신 것이다. 언젠가 이콘을 처음 배우면서 “감히 내가 하느님의 얼굴을 그리다니….” 하며 경탄하던 어떤 젊은 사제의 해맑은 미소가 생각난다. 신부님의 이러한 태도는 가끔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성화를 그리고 있나?’ 이콘을 그리는 것, 곧 하느님의 얼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얼굴, 사랑의 얼굴을 그리는 것, 이것은 기도와 성령의 은총으로 가능하다. 성경, 즉 복음서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였듯이 이콘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를 중심으로 쓰인 그림으로 된 성경, 곧 제5 복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콘 화가들이 ‘이콘을 그린다’라고 하지 않고 성령의 영감으로 ‘받아 쓴다’고 말한다. 이콘을 하늘나라로 통하는 큰 창문에 자주 비유한다. ‘왜 이콘을 큰 창문으로 비유하지? 왜 하늘나라로 통하는 큰 창문일까?’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책상 위에 놓인 이콘 속의 예수님 얼굴을 10년 넘게 바라보고, 눈을 맞추며 말하고, 기도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이콘 속의 예수님께로 마음이 열렸다. 바라보면 정겹고, 보지 않으면 허전하여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다. 이콘 속의 예수님이 하느님의 실재는 아니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며 그 은총에 동참하게 한다. 그래서 이콘을 바라보고 기도할수록 우리가 하늘나라로 향하는 마음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카 12, 34)라는 복음 말씀처럼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창문은 어디에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돈에 관심이 많다면 늘 돈 버는 생각을 하게 되고, 누군가 여러 가지 말을 하더라도 돈에 대한 말만 유독 귀에 많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 사람에겐 그쪽으로 마음의 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 허영심에 마음이 치닫는다면 과대 포장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그쪽에다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며 그 문을 통해 들락날락하고, 만일 욕정에 마음이 기울어진다면 매력적인 남자나 여자에게 끌려 다니며 인생을 허비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가치관의 혼란 속에 살아가면서도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신앙인이다. 바쁜 일상, 해결해야 할 내적 혼돈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순히 따르며 성령께서 다스리시는 빛의 세계로 우리의 시선을 들어 높임이 필요하다. 기도하기 위해 자주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은 사랑 가득한 눈으로 우리와 지그시 눈을 마주치며 말씀하실 것이다. ‘사랑한다. 딸아! 사랑한다. 나의 귀염둥이야!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 너를 간절히 원한다.’(이사 43장 참조)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그분의 얼굴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선명히 드러나 보일 때까지 예수님을 들여다보며 그분께 마음을 드리자. 예수님의 얼굴이 마음 안에 가득 차서 고통받는 이들과 모든 환자,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 주어 미운 이들과 받아들이기 힘든 죄인들조차 하느님이 사랑하라고 주신 내 이웃임을 깨닫고 그들 안에서 나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시는 그분을 위해 이웃사랑을 실천해보자. 사랑하는 벗님들! 코로나19가 몇 달째 계속되며 우리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아 간 상황에서도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기도하시며 제자 수녀들의 사명에 기쁜 협력과 사랑으로 함께 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