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 구원의 장(場)
장로마 M.루치아 수녀
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2월 10일, 스승예수의 제자수녀회 창립일이자 성녀 스콜라스티카 기념일에 첫 서원을 발한 제자수녀입니다. 첫 서원을 발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맡기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마치 신혼의 달콤함을 꿈꾸듯 주님과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이내 달콤함보다는 이전과는 다소 달라진 생활 형태 속에 그저 던져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제 마음속에 부대끼는 마음이 생기면서 불안과 걱정, 불만 그리고 밋밋함까지 찾아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듯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그러던 중, 몸까지도 많이 지친 어느 날, 어떤 불편한 상황을 만나자 바로 저의 방어 기제가 발동하여 상대방에게 표출되었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며 애썼지만 어려움 앞에서 저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저의 현재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지요. 그날 밤 저는 제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저의 약하고 비참한 처지를 보며 한탄하였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참 이상하게도 어제 그 상대를 바라보는데 참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 안에 사로잡힌 저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눈길을 조금 허락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의 답답함은 잦아들고 오히려 상대에게 그만큼 참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상대를 제 마음의 흐린 날씨와 나약함 안에서 함부로 판단한 것이 참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다시 생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역시 우리의 삶이 인간적인 것에서 신적인 것으로 넘어가지 않고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체험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안에 머물러 있을 때는 마음의 흐린 날씨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오히려 그 생각은 머릿속에서 확장되어 자극을 받는 상황을 만나게 되면 죄를 짓게 되고 죽음으로 향하게 되지만,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게 되면 생명을 얻게 됨을 알려 주셨습니다. 나 자신이건 상대방이건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거친 마음은 잠재워지고 저의 약함은 오히려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게 되며 그곳이 바로 구원과 생명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고 나니 내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고 나를 구원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현실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내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 있으며, 그러기에 저의 약함이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재료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저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자신만으로는 죽을 운명인 제게 생명으로 넘어가게 해 주신 파스카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기도가 잘 안 되거나, 주님을 느끼고 싶은데 잘 느껴지지 않으면 종종 ‘과연 하느님이 진짜 계시기는 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는 했었습니다. 특별히 인간 스스로 증명이 불가한 신의 존재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은총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과거의 사건을 되짚어 보며 주님께서 하신 일을 유추하거나 지난 삶의 역사를 신앙적 차원으로 재해석하며 그분의 개입을 확인하고자 애쓰며 믿음의 삶을 유지해 왔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에게 이번 체험은 하느님이 뜬구름 같은 분이 아니라 구체화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생생하고 분명한 실체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조차도 어쩔 수 없는 제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은 저 자신에게는 참으로 실재하는 것이니까요. 그 이후에도 저의 부족함이나 나약함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순간순간에 오늘도 나와 또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주님 손길에 내어놓게 되니 이상하게 참 기분이 좋습니다. 믿음이 약한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제게 주신 의탁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려 이번 체험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하여 주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요즘 저는 매일의 어려운 순간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힘을 얻어요. “나는 주님 구원의 장(場)입니다.” 사랑하는 스승 예수님의 벗님들도 매일의 삶이 주님께서 초대하시는 생명으로 넘어가는 기쁜 부활시기 보내시길 바라며 또한 사도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 희망 가득 찬 5월 한 달 되시길 기도합니다.